나는 9년 차 전도사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참가했던 수련회에서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이라는 찬양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나도 그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의 나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하면 그게 무슨 일이든 뛰어들어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신학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엔 전도사라는 타이틀이 좋았다. 대단한 것 같고, 숭고한 것 같았다. 고차원의 영적 세계를 보면서도 묵묵히 수행하는, 멋진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엔 지혜를 품고 조용히 지내다가, 강단에 섰을땐 남다른 포스로 그것을 전하는 예언자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전도사의 이미지가 그랬으니, 내 이름 뒤에 딸랑 ‘전도사’라는 타이틀 하나 붙은 것만으로도 자부심 가지기엔 충분했다. 찬양인도자를 맡으니 그 자부심은 더해졌다. 많은 성도들 앞에서 어쿠스틱 기타 하나 메고, 찬양팀을 이끌면서 찬양하는 내 모습. 비아냥 좀 섞어 표현하자면, 성령님과 “직통으로” 소통하면서 회중들의 영적 필요에 반응하는 그런 예배인도자의 모습. 그게 내가 그려오던 전도사로서의 자화상이었다.
그런데 난 곧 한 가지 잔혹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참 당연한 건데, 자화상은 멋있게 그리려 노력할수록 점점 자화상이 아니게 된다는 것 말이다.
고흐가 자화상과 자신이 닮지 않자 귀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실 쉽게 공감할 수는 없는 기행이지만, 열심히 그려온 자화상이 자신과 닮지 않은 게 고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던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 기행이 이해가 된다.
전도사로서 내가 그려온 자화상은 멋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려갈수록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숭고한 사람도 아니었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하나님과 소위 “직통으로” 연결되어있지도 않았다.
한동안 토요일만 되면 나는 이 괴리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카타르시스가 올 때까지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거나 찬양을 했다. 주일날 조금이나마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찬양하거나 말씀을 전하려면, 마치 찜질방에서 땀 빼듯 두세 시간은 엎드려서 억지로 땀과 눈물을 빼내야 했다.
누군가는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는 사역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건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휴지가 없어 휴지심으로 똥 닦고 나온 듯한 불안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주일만 넘기면 또 6일은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한 주를 보내면, 또 다음 주도 똑같이 하고, 그다음 주도 똑같이 하고... 그렇게 나의 사역은 몇 년 동안임시방편의 연속이었다.
매주 내 모습은 전도사를 하기엔 부끄러워 보였고, 찬양인도자로, 설교자로 서기 위해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기 시작했다. ‘자격 없는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라는 메시지가 찬양인도 멘트에, 설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인 것 같다. 언뜻 되게 은혜로운 메시지인 것 같지만, 사실 그건 휴지심으로 뒤처리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사역을 해나가다 보니 점점 괴로움은 커졌다. 차라리 고흐처럼 귀 한쪽 잘라서 자화상과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자화상은 내 얼굴에 귀를 몇 개 더 이식하면 모를까, 귀 한쪽 잘라낸다고 같아질 것이 아니었다. 고흐가 귀 하나 잘라서 자화상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정말 욕심을 다스리고 겸손하게 자화상을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욕심껏 자화상을 그렸다. 한껏 멋들어진 자화상을 그리던 나에겐 고흐가 한 것 같은 그런 옵션도 불가능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난 계속해서 전도사여야 했다. 매주 찬양인도를 했고, 설교를 했다. 한동안은 어떻게든 자화상을 닮 아가 보려 괴로운 노력을 이어갔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포기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아예 내 마음에 ‘타화상’을 걸었다. 왜냐하면, 자화상은 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타화상은 비교적 날 괴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부서 선생님이 원하는 전도사, 성도들이 좋아하는 전도사, 담임목사님이 좋아하는 전도사이면 됐다. 애초에 내가 나를 그린 그림이 아니니까, 나랑 닮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게 더 효율적이었고 안전했다.
내가 안 믿어져도 예수 믿자고 설교하면 됐고, 나는 사랑이 없어도 서로 사랑하자고 외치면 됐다. 정작 나는 지혜가 없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면 그걸로 됐다. 그렇게 하면 (나를 포함) 누구도 태클 걸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국엔 못 견디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내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남의 그림만 방에다 걸어두고, 직접 자기 그림은 그리지도 않는 화가를 화가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결국 내 그림을 그려야 했다.
고흐는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였으니까 귀만 자르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난 아니다. 그래서 이전의 내가 그렸던 전도사로서의 자화상은구석탱이에 처박은 습작으로 치고, 아예 새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제는 진짜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 괴리를 합리화하려고 썼던 이런저런 미사여구들, 타화상에 부합하려 노력하며 만들어진 습관이나 꾀와 재주들은 내버려 두고, 이제 진짜 나를 닮은 자화상을 그려가고 싶다.
멋있는 자화상은커녕, 오히려 그냥 '화상'에 가까운 민낯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나를 그려나가 보고 싶다. 겨우 귀 한쪽 닮지 않은 게 화가 나서 깔끔하게 귀를 잘라버릴 만큼의, 그런 민낯의 자화상을 그리는 전도사가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