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주 시민이다
경주에 눌러앉기로 했다. 내겐 너무 지긋지긋했던 서울살이. 취업도 무섭고 서울도 무섭고 미래도 무서웠다. 다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빽빽하지 않은 도시에서, 살아있어 좋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곁에 앉은 몇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길 바랐다. 정말 그뿐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경주 한달살이를 선택했다. 경주를 선택한 건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청년마을 사업이 경주 감포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그곳에선 숙식이 제공됐기 때문이다. 그저 내게 경주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다녀온, 첨성대가 있는 그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한달은 내 삶의 항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냥 여기에서 살아야겠다. 그렇게 느꼈다. 뭐가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쯤은 있겠지 싶었다. 한달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집에 던지고선 이주 뒤, 백오십 만원을 빌려 다시 경주로 내려왔다. 이렇게 무모할 수 있나. 그게 스스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다시 돌아가면.. 이 한 달은 그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렸을 뿐인 것이 되고 만다. 더이상 삶을 연명하듯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경주에 있다.
방을 하나 얻기로 했다. 작고 귀엽고 소중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피식 피식 자꾸 웃음이 난다. 이게 된다고? 의 연속. 좀 비좁으면 어때. 고깟 방 한 칸에 발목 잡힐 행복이 아니다. 내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을 벌이며 살아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