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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Oct 18. 2023

어떤 양말 좋아하세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에세이 ‘아무튼 시리즈’는 꽤 유명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 50여 권이 넘는 듯. 이중 세 권을 읽었다. 술을 좋아해 <아무튼 술>을 읽었고, 이슬아 작가의 글이 좋아 <아무튼 노래>를 봤으며, 런데이 앱을 깔고 달리기를 시작하던 1주 차에 <아무튼 달리기>를 빌려봤다. 앞으로도 읽을 시리즈가 수십 권이나 남아 있다며 흡족한 마음으로 서점 사이트에서 책 제목들을 훑어봤다.



엥? 잠깐! 이걸로 책 한 권이 나온다고?



나로선 의아한 제목에 시선이 멈췄다. <아무튼 양말>이다. 책 소개를 보며 ‘양말 애호가’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양말이 88켤레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라는 부제에 입이 턱 벌어졌다. 88켤레?(내겐 몹시 터무니없는 숫자다;) 양말을 좋아하는 구달 작가는 매일 양말을 고르고, 그날 누구를 만나 무얼 하느냐에 따라 착용하는 양말의 색깔도 무늬도 달라진다고 했다. 존중은 하지만 내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나의 취향을 먼저 밝히겠다. 나는 똑같은 색깔, 똑같은 모양의 양말을 산다. 언제부터였는지 날짜를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소 몇 년은 된 습관. 내 양말로 시작해 남편과 아이 양말도 사부작사부작 같은 색깔과 모양으로 사다 나르는 중이다. 어쨌든 신는 건 자기들이지만 빨고 개야 하는 관리는 주부인 나의 몫이 크니.




다종다양한 양말 매력에 잠깐 빠진 적은 있었다. 물론 수십 년 전 일이다.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 규정이 있던 고등학교 시절. 멋 부릴 곳은 양말뿐이었던가. 당시 유행하던 양말 브랜드 가게가 학교 앞에 있었다. 나는 그곳을 자주 드나들며 양말 목에 방울이나 리본 따위가 달려있는 것들을 골라 샀다. 교복 치마에 신발을 신으면 딱 보이는 발목이 여고생 시절 나의 유일한 패션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당시는 멋 좀 부렸다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꽤나 유치하고 머쓱한 디자인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양말보다는 스타킹을 신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양말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어느 날은 베이지색을, 또 어느 날은 줄무늬를 한 켤레씩 사서 중구난방 서랍에 채웠다.


그런데 그 양말이라는 것이 말이다. 오늘은 베이지색을 신어야지 마음먹으면 아무리 뒤져도 그 양말이 한 짝 밖에 보이지 않았고, 줄무늬 양말을 신어볼까 하는 주말엔 그 녀석도 짝을 잃고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밀려오는 짜증과 남은 한 짝을 바라보며 느끼는 아까움, 그것을 어찌해야 할까 버릴까 말까 갈팡질팡하며 소모되는 불필요한 에너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도 빨래를 개다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있는 양말 한 짝을 보았다. 분명히 신었던 것들을 모조리 세탁기에 넣었을 텐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날 더 이상 이렇게 사지, 아니 살지 말자 비장하게(?) 결심한듯하다.




이후 나는 똑같은 색깔 똑같은 모양의 양말을 묶음으로 산다. 물론 최소한의 종류를 구분해서 갖춰놓기는 한다. 계절에 따라 발목양말과 덧신양말로, 진한색과 옅은 색으로. 최근까진 회색 덧신 양말만 신었고, 찬바람이 발목을 스치는 요즘엔 덧신에서 발목양말로만 바뀌는 꼴이다.


‘이 양반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구먼’ 끌끌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같은 양말을 대량(?) 구매해 놓으면 유익한 점이 제법 많다.     


첫째. 세탁 후 굳이 두 개씩 짝을 지어 묶어놓을 필요가 없다. 나의 소중한 노동력이 티끌만큼 절약된다. 그게 뭐 별거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힘들지는 않아도 유독 귀찮은 일이 있는 법. 내게 양말 개기가 그렇다. 왜냐. 양말 말고도 개야 할 세탁물은 차고 넘치니. 나의 에너지를 티끌만큼이라도 아끼고 싶다.


둘째. 신을 때 서로의 색깔과 모양을 맞춰가며 양말을 찾아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우리 집엔 양말 귀신이 사는지 이상하게도 한 짝씩 남겨진 녀석이 많았다. 건조 후 귀찮아서 짝짓지 않고 대충 서랍에 욱여넣어놓으면 급할 때 꼭 나머지 한 놈이 보이질 않는다. 서랍을 파헤치다 결국 험한 말이 나오기도 한다. 같은 종류로 사놓으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신으면 되니 나의 에너지가 절약된다.    


셋째. 한 짝에 문제가 생겨도 남은 한 짝을 살릴 수 있다. 내 신체적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잘 난다. 아끼는 양말일 경우 어찌어찌 꿰매 신기도 하지만 기우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니 손이 잘 가질 않는다. 남은 한 짝은 구멍 난 녀석과 함께 청소함으로 들어가야 하니 여간 낭비가 아니다.(참고로 비가 내리는 날 버려진 양말을 이용해 창틀 청소를 한다) 똑같은 양말로 여러 켤레를 사면 한 짝에 문제가 생겨도 남은 한 놈은 짝꿍을 바꿔가며 또 신겨지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취향을 두고 누가 맞다 틀리다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고작 양말 하나 가지고 시시비비를 따질 일도 아니니. 그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도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는 것. 나는 내 양말 취향으로 멋은 잃었지만 실용성을 얻었다. 멋을 잃었다고 해서 단정함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니 계속 별거 아닌 내 양말 취향을 고수해 보겠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에 의미를 두며.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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