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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Apr 06. 2024

5분의 찰나

나를 지켜주는 세계

5분의 찰나.

깜깜한 무대 위 나와 피아노가 조명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다. 이 세상에 나와 피아노 단 둘이 남은 듯이.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며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크게 한 숨을 고르고 용기를 내어 첫 음을 눌러 연주를 시작한다. 3개월 동안 무수히 노래 부르고 연습했던 멜로디에 의지해 나는 내 손이 기억하는 대로 수많은 건반 위를 누르며 한 곡을 완주한다. 마지막 음을 누르고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관객들은 진심을 다해서 박수로 화답한다.
 
 나는 관객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경험이 꽤 많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꽤 오래된 17년 전이지만, 그때의 나는 대부분 콩쿠르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콩쿠르에 나온 어떤 참가자들보다 내가 돋보여야 했기에 어려운 곡을 쳐야 했고,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야만 했다. 모두가 나의 경쟁자였다. 그래서 나는 즐기면서 치기보다는 '실수하면 안 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나는 틀리지 않게 잘 치려고만 했을 뿐, 즐기면서 아름답게 치려고 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피아노가 아닌 간호사의 길을 선택한 나는 깜깜한 새벽 4시 반에 출근해서 해가 지고 캄캄해진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었던 신규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술기와 실제 임상 사이의 괴리감은 너무 커서 모르는 것이 당연했지만 늘 혼나면서 배워야 했다. 한 달 남짓 짧은 교육기간 후 10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해야 했고,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일이기에 신규 간호사에게도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환자들의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 물 한 모금, 한 끼니의 식사조차 챙기지 못하며 일하는 상황은 다반사였고, 담당 환자를 돌보는 중간중간 여러 업무들을 도맡아야 했다. 드레싱카트를 끌고 다니며 의사들의 드레싱 어시스트를 해야 했고, 어디서든 콜벨이 울리면 뛰어가야 했고, 병동 전화 벨소리가 3번 울리기 전에 즉각 받아야 했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어떤 요구에도 친절하게 응대해야 했다.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을 당시 가졌던 티끌 없이 맑고 선한 마음가짐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현실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진 채로, 누군가가 괜찮냐고 어깨만 툭 쳐도 눈물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채로 힘겹게 1년을 버텼다. 그보다 조금은 나아진 채로 또 1년을 버텼지만 신체적으로 힘들었던 3교대 근무와, 동료와 환자와 보호자들로부터 수없이 받은 여러 상처들, 의사들과의 일방적인 관계 등으로 마음이 힘들었던 나는 사직서를 내기 전 부서이동을 선택했다. 그곳은 식사시간, 퇴근시간, 화장실에 갈 시간 등은 보장된 곳이었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업무를 해야 했다. 간호사와 의사의 업무의 중간, 그 경계가 모호한 곳에서 나는 환자의 수술에 참여하고 수술 전후과정을 도왔다. 누군가는 내가 속한 집단을 불법인력, 유령인력이라 부르지만, 우리나라 의료 현실 상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미 약 2만 명의 간호사가 나와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다닌다며 안정적인 간호사 직업이라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지 않았고, 이 일이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오래 헤매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꼭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일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그래도 잘 해내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인 것은 틀림없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전까지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피아노학원을 찾게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학원에서 여는 작은 연주회에 참가했다. 세 번의 연주회에 나가면서 어릴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틀리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만의 호흡으로 노래하는 것이었다. 프로 피아니스트의 박자, 기교, 해석을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력 내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내가 이해한 대로 연주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잘 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연주를 하는 동안 아름다운 곡을 느끼면서 충분히 즐기고 있다면 몇 번의 미스터치가 생기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님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목표가 없으면 좌절도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 포기할 일도 없다. 적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으니까. 그리고 아름다운 곡은 내 앞에 분명히 존재해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는다. 인생에는 이런 세계도 존재했던 것이다. 목표가 없어도, 어딘가를 향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무작정 노력하는 그 자체로 즐거운 세계이다.’

 입사한 지 약 1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 세계는 나아질 기미가 없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한 피아노세계는 달랐다.
세상에 아름다운 곡들은 너무도 많았고, 나는 그 아름다운 곡을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할 수 있었다. 실수와 실패를 수없이 거듭해도 괜찮았다. 노력하면 할수록 분명히 나의 연주는 더 좋아졌다.
누군가의 인정과 평가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아름다운 음악 앞에서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아마추어 피아노 세계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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