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살이하며 친구 만들지 않는 이유, 슬기롭게 외국살이하는 법
아들과 함께 말레이시아에 온 지도 만 이 년이 되어간다. 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내 단짝은 여전히 아들이다. 남들이 알면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어떻게 지내요?"라고 깜짝 놀라 물을 만하다. 나인들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억지로 친구 찾아 여기저기 유랑하고 싶지는 않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끊으니,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제일 어렵다. 게다가 이곳에서 나는 특수한 계층(?)의 사람이라서 더더욱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찾기 힘들다. 같은 곳에 서 있지 않은, 다른 부류의 사람과 친해지는 거 쉽지 않다. 그래서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왜 특수한 계층의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학교 다니는 아들과 둘이 살고 있다. 내가 있는 곳에 사는 한국인 어른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목적(아이 교육)으로 이곳에 살고 있지만, 그들과 내가 한 가지 다른 점은 '성별'이다. 주민등록번호 뒷부분의 숫자가 2로 시작하는 분들이 대부분 이곳, 말레이시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계신다. 간혹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진 분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의 확률이다. 마주치기 어려운 사람끼리 마주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그다음 단계로 자연스레 넘어가 입을 트고 지내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면, 그냥 목례 가볍게 하고 서로 갈 길을 간다. 그게 끝.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아마도 상대방도 나처럼 굳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가 보다 생각하고 나도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작은 사건이 하나 있다. 말레이시아에 처음 오고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우연히 나와 작은 인연이 닿는 사람이 멀지 않은 지역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분에게 반가운 마음을 담아 연락하였고, 며칠 후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들이 하는 방식대로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아...저는 아이 학교 때문에 왔고, 아들과 둘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하시던 일은 어떻게 하고요?"
"여기 오기 전에, 그만두고 왔습니다."
"그럼 여기서는 아무 일도 안 하시고, 아이만 돌보시는 거예요?"
"네, 아이도 보고, 제가 평소 하고 싶던 일도 준비 중입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 뭔데요? 돈은 따로 안 버셔도 돼요? 모아둔 돈이 많으신가? 혹시 주식 투자하시는 거예요?"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아 보이는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왔다니 그분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던 만남은 어색하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그 뒤로 그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물론 그분도 헤어질 때 "언제 밥 한번 하죠."라는 인사치레는 했지만, 말 그대로 인사치레였을 뿐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 만드는 데 거부감이 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모든 사람이 이럴 것은 아니겠지만),이런 취조하는 듯한 질문에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지인 하나 없는 곳에서 아들과 단둘이 지내면서 걱정되는 게 딱 하나 있기는 하다. 만약 내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내 아들을 어떻게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게 할 수 있을지가, 내가 아주 종종 하는 걱정이다. 재수 없는 생각이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떠올리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야겠기에 휴대전화에 아들이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엄마 번호와 내가 사는 지역의 한인회 연락처는 따로 저장해 두었다. 아들과 관련된 걱정을 빼면 나는 혼자인 삶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아니, 불편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는 어느 독일 철학자가 말했다. 나는, 이 철학자의 말을 곱씹으며, 외롭게, 아니 고독하게 슬기로운 말레이 생활을 하고 있다.
*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