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외국인은 현지인보다 비싸게 주유해야 합니다.
기름이 물보다 싸다니!
기름 펑펑 나는 중동의 어느 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생활하는 말레이시아도 기름이 정말 물(생수)보다 싸다. 휘발유 1리터에 2.05링깃(2025년 9월 27일 환율 기준 한화로 약 680원 정도)이고, 편의점에서는 500ml 생수 한 병이 2링깃 정도 하니, 기름(휘발유)이 물 보다 싼 게 맞다. 물보다 싼 기름을 너무 펑펑 쓰는 게 아까웠는지, 얼마 전에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기름값을 인상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레이시아 국민에게는 조금 더 싸게 기름을 팔고, 외국인에게는 더 비싸게 판다는 정책이다. 며칠 후부터는 말레이시아에서 사는 나 같은 외국인들은 내국인들보다 비싼 기름을 써야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 발표 내용을 보면, 현재 1리터에 2.05링깃 하는 휘발유 가격을 2025년 9월 30일부터 1.99링깃(내국인 대상)과 2.60링깃(외국인 대상)으로 조정한다. 말레이시아 기름값이 싼 이유가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 보조금 혜택을 자국민들만 누릴 수 있게 정책을 손봤다.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나 같은 이방인은 졸지에 갑자기 약 30퍼센트나 가격이 오른 휘발유를 넣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 당황스럽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냥 따를 수밖에.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이렇게 '억울'하고 다소 '불합리'한 상황에 맞닥트릴 때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게 무슨 억울하기까지 한 상황이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에 대해 논쟁하자면 글이 길어지니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젊은 시절 영국에서 잠깐 지낼 때 이야기다.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한 일본 친구가 하루는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길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젯밤에 길 가는데 갑자기 어떤 젊은 놈들이 나타나더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페인트를 뿌리더라고."
심각한 내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 친구가 분위기를 풀려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페인트 묻은 청바지를 보니 오히려 개성 있어 보여서 그냥 입고 왔어."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에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 친구를 보고 나는 깨달았다. 외국 생활은 힘들고,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걸. 이후로도 사주에 끼인 역마살 때문인지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을 제법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번에 겪은 '기름값 인상 사건' 정도는 이제는 우습게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 쌓였지만, 가끔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향수병이 도지기도 한다.
이번 '기름값 인상' 같이 '합법적'으로 나의 평화로운 해외 생활을 방해하는 불청객은 물론 이뿐만이 아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비자도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하는데, 매번 적지 않은 서류도 준비해야 하고, 힘들게 준비한 서류는 퇴짜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간혹 여행을 갈 때는 현지인들보다 두 세배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관광지를 구경해야 한다. 가장 자신 있는 한국말은 써먹을 수 없으니, 운전 중에 가벼운 접촉 사고라도 나면, 상대방에게 미리 한 수 접어주고 시작해야 한다.
요즘 고공행진 중인 환율 때문에 가뜩이나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있는데, 기름값마저 많이 오른다니 넋두리하게 되었다. 가격이 올라도 여전히 기름이 물 보다는 싸지만, 언젠가는 나 같은 외국인'만' 물 보다 비싼 기름을 써야 하는 날이 오게 되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기름이 물보다 훨씬 비싼 나라이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