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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Sep 02. 2024

귀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구에서 살아보기

 더위가 정점을 찍는 한 여름 동안에 나는 강원도 양구로 피서를 갔다. 2주 간의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이하 PDC, Permaculture design course) 교육 과정을 듣기 위함이었다. 퍼머컬처는 농부들이 주로 배우기 때문에 간혹 Farmer Culture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다. 정확하게는 Perma(nent) + (Agri)culture로, 영속적인 농법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퍼머컬처는 단순히 농사를 넘어 자연의 패턴과 관계를 모방해서 삶터에 필요한 주거, 음식, 섬유, 에너지, 치유, 문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하고 실천하는 체계론적 사고방식이자 원리이다. 


자연의 복원력을 믿는 재야생화(rewilding)가 이슈이다. 지구가열화(Global boiling)*로 인해 인간의 삶이 점차적으로 파괴되고 우리 후손들이 아니라, 당장 우리 세대의 생사가 위협받고 있다. 올해 지구 평균 온도는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1.5도 한계점을 넘어버렸다. 자원을 착취하고 소모하는 기존의 삶의 방식이 아닌 다른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퍼머컬처라는 열쇠를 찾았다. 스스로 작동하는 자연을 닮은 먹거리 생태계를 조성하고, 재야생화가 이루어진 숲에서 우리는 먹거리를 채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더불어 자연에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순환적인 건축과 에너지 사용,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어찌 보면 오늘날의 위기 상황에 취해야 할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으로 구축된 PDC 교육 과정은 나를 매료시켰다. 


*작년 7월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가열화 시대가 찾아왔다(The era of global warming has ended; the era of global boiling has arrived)”고 말했다.  


퍼머컬처 디자이너 소란의 PDC 교육과정은 매년 다양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의정부의 퍼머컬처 숲밭가드너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던지라, PDC 과정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또한 매년 여름 열리는 퍼머컬처 네트워크 대회에서 PDC 수료생들의 디자인 발표회를 들어보면서, 이러한 생태적인 삶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론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던 때였다. 내가 귀촌을 하려는 지역으로 찜해놓은 강원도 산촌인 양구에서 PDC 2주 합숙 과정이 열린다는 소식에 운명인가 싶어 신청서를 냈다. 이 교육과정을 주최한 양구의 '까미노 사이더리'에 다녀와 본 PDC 선배들의 양구 좋다는 칭찬에 양구 2주살이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번에 양구를 가면 귀촌에 대한 가닥을 잡을 수 있을까? 함께 생태마을 커뮤니티를 꾸리고 싶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귀촌에 앞서 커뮤니티(공동체적) 생활양식을 체득하고 있던 나에게 시기적절한 프로그램이었다. 


 

양구의 아름다운 산(좌), 실습이 이루어질 공터(우)


양구는 춘천의 북쪽, 화천과 인제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강원도 다른 지역에 비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사람의 손길이 덜 느껴지는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교육받을 마을회관이 위치한 곳의 주소는 '국토정중앙면'으로, 실제 대한민국 영토에서 정중앙에 위치하여 그러한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배꼽'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어, 배꼽식당, 배꼽축제 등 귀여운 명명이 된 사례를 많이 보았다. 북한과 가까워 군부대가 많고, 군인 가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에 아이들도 많다. 교육 과정에서 만난 양구 주민의 말에 따르면, 젊은 부부들 중 2~3명의 아이가 있는 경우도 많으며, 어린이집이며 초중고교, 방과후 학교, 심지어는 일부 대학 과정까지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있다면 너른 시골 자연에서 뛰어놀며 상상력을 무한으로 확장시키는 기회를 주고 싶은 나를 혹하게 하는 정책이었다. 


양구 PDC 교육 과정을 유치한 까미노 사이더리는 양구에서 생산되는 못난이 파지사과를 이용하여 애플사이더나 사과콤부차 등을 연구, 개발하며 판매까지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퍼머컬처 밭을 일구며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를 가르치는 기후활동가라고도 할 수 있다. 퍼머컬처 디자이너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나에게 귀한 경험이었다. 농부라는 직업 자체가 점점 외면받고, 자원을 소비하는 기술 중심의 스마트팜에만 정부 지원이 몰리는 현실 가운데 퍼머컬처 디자이너는 아주아주 작은 파이에 불과하다. 망망대해에 떠서 누가 들어주기만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외치는 작은 목소리이다. 


기후 위기로 먹거리 물가가 치솟으면서 대량의 보편적인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스마트팜이 일부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탄소를 저장하며 자연을 재야생화하는 방식의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부는 점점 더 조명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생산된 먹거리는 훨씬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 대한 관심도의 증가와 함께 퍼머컬처 농부의 먹거리 또한 수요가 늘어나지 않을까? 


퍼머컬처 디자인에는 4가지 윤리 원칙이 있다. 자신을 돌보고, 지구를 돌보고, 공정하게 분배하고, 영혼을 돌보라는 것. 퍼머컬처 방식의 무엇인가를 설계할 때 이 4가지 원칙을 따르고 있는가를 체크해 나가면서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퍼머컬처 디자이너들의 활동은 지역별로 다 다르고, 직업군도 다양하기 때문에 선례가 있다한들 그것을 나의 지역과 나의 상황에 똑같이 복사 붙여넣기를 할 수가 없다. 나의 주변 자원을 활용하고, 나의 지역과 주민들의 상황을 읽는 눈이 필요한 이유이다. PDC 교육 과정에서는 이러한 사고의 확장, 어찌 보면 풍수지리와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선조들의 지혜 같은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고도 느꼈다.




현대사회가 발전하며 농촌 공동체가 많이 사라졌다. 요즘 SNS에서는 공부나 열심히 하여 서울에서 대기업 가는 것이, 혹은 쎄빠지게 돈을 모아 잘 사는 해외로 탈출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능력주의는 우리가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든다. 1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경쟁에서 뒤처진 루저가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협업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하게 만든다. 1인 가구가 늘고, 알고리즘으로 나의 관심사만 보게 되면서, 가족 혹은 마을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 간의 일상적인 마찰은 사라졌다. 자연스레 나의 좁은 우물 안에서 다른 우물의 사람들을 표면적으로만 보며 오해하고, 혐오하고, 타인의 문제를 방치한다. 


세계화가 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지역이 도시화되고, 산업화, 자본주의화 된다. 즉 지역적 특성이 사라지고 마을 공동체는 분열된다. 세계적인 유통망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서 세계 경제 위기에 가정 경제도 함께 흔들리고, 세계 식량 위기에 우리 앞의 밥상 물가도 큰 타격을 받는다. 


과거 우리가 탈피하고자 했던 많은 지역 공동체의 악습과 위와 같은 세계화의 역설을 보완하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구축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세계가 미국을 닮아가려 하고 닮아가는 ‘미국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가 서울을 닮아가려 하고 닮아가고 있는 현상은 ‘서울화’라고 할 만하다.
출처 : 더스쿠프(https://www.thescoop.co.kr)


이를 위해 퍼머컬처 디자인 과정은 전환마을 운동을 제안한다. 전환마을운동(Transition Movement)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탈탄소 사회를 준비하고 공동체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만들어가는 마을운동이다. 2006년 아일랜드의 킨세일(Kinsale)과 영국의 토트네스(Totnes)에서 시작된 전환마을운동은 10년도 되지 않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시작하여,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갖추어 충격을 흡수하고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능력을 기르는 운동이다. 과거의 권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즉, 공동체의 정해진 규범을 무조건적으로 따른다기보다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색을 만들어 나간다. 공동체원이 바뀌면 그 공동체의 성격 또한 바뀔 것이다. 



퍼머컬처 밭을 일구며 사는 양구 주민의 집



PDC 과정은 이러한 이론적인 수업과 더불어 양구 지역의 공터에 함께 숲을 닮은 밭을 설계하고, 다 같이 삽질을 하며 설계를 구현하고, 그 지역에서 이루어질 만한 프로그램을 고안하여 제시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총 72시간을 수료할 시 수료증이 나오며, 다른 이들에게 교육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소란이 진행하는 PDC 교육은 월 1~2회 총 1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과 2주 간의 합숙 과정이 대표적이다. 1년 과정에 비해 2주 합숙과정이 특별히 다른 점은 매일 오전/오후 수업이 끝나고 저녁 시간에 무언가를 배우거나 나누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막걸리 만들기, 소리 명상, 바구니 엮기, 잡초로 요리하기 등 퍼머컬처 밭에서 파생되는 문화를 체험해 보는 시간이다. 


사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라 이러한 장기 합숙과정이 두려웠다. PDC 선배들은 말했다. 2주 합숙과정을 하고 나면 정말 빠르게 친해진다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넘어 더불어 사는 삶이 답이라고 믿게 되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한 충분한 연습이 필요했다. 좋든 싫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2주 동안 진하게 살아보기. 그리고 실제 내가 살아갈 생태마을 공동체를 상상해보기. 어떤 사람들과 함께 2주를 보내게 될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2주 동안 머물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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