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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by 작중화자

스물, 그 아이가 죽었다.

스물아홉, 그 아이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나는 오래 술을 마셨고, 한동안 울었다.


살면서 몇 번이나 그 얼굴들을 떠올렸을까?

눈가에 생긴 기미가 짙어지고, 허리까지 자란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부모가 되는 동안, 스무 살에서 더 자라지 못했을 너와 결국 서른이 되지 못한 너를, 나는 아픈 상처를 들춰보듯 생각하곤 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강원도의 어느 마을, 한겨울의 비탈에 너도나도 담요를 덮고 누워 손발이 얼어 곱는 줄도 모른 채 낙하하는 유성을 세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별을 본 적도, 쉼 없이 떨어지는 유성도 본 일이 없었다. 우리는 열여덟이었다.

뒤늦게 천문관측 동아리에 들어온 네가 나는 마냥 신기했다. 촐랑대며 장난만 치는 녀석이 별이니 달이니 하는 거엔 관심도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쩌면 너는 꿈꾸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의 너를 설레게 했을 꿈이, 네가 마땅히 맞이했어야 하는 스물한 살과 서른이, 멈출 생각 없이 나이를 먹는 나를 때때로 괴롭혔다.


서른을 앞두고, 이제 겨우 원하는 회사에 취직한 너는 원통했겠다.

혼자 장례식장을 다녀온 저녁, 불 꺼진 자취방에 돌아가는 게 싫어 기어이 친구를 불러내 술을 마셨다. 그때 나는 무엇이 슬퍼서 그렇게 울었는지, 우린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뒤에 남겨진 너의 꿈이 안쓰러웠는지, 갈 데 없는 너의 열망들이 허망해 울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있는 힘껏 살다가도 이 삶이 너무 허무해 견딜 수 없었다. 지하철 플랫폼에 선 내가 무서워 뒷걸음질 칠 때도 너는 여전히 스무 살이었고, 서른을 앞둔 너는 너의 끝을 알지 못한 채 그다지도 필사적이었다.


호텔 Crew Lounge에 모인 델타 항공의 승무원들과 Natalie의 예순두 번째 생일을 함께 축하하며, 고작 몇 번의 생일을 보냈을 그 얼굴들이 하릴없이 떠올랐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이 밤이 생의 마지막이 된다면, 나의 꿈은 어디로 가버릴까? 그 아이들의 꿈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어딘가에서 다른 생을 부여받았을까?


나의 시간은 여전히 앞만 보고 간다. 권태와 무기력의 무지갱을 기어오르며 어떻게든 오늘을 산다.

그 얼굴들은 내 등을 떠민다.

살아 있으니 뭐라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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