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했던 이십 대로 다시 돌아가 전공을 바꾸고 싶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원하는 것들을 더 탐구해 보고 싶기도 하고,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저는 아이가 쓰러지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길에서 길을 잃었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뿌옇게 서린 안갯속에 주저앉은 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아이가 괜찮기를 바라며 무릎을 꿇고, 이 안개가 언젠가는 분명히 걷힐 안개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불안했어요. 이것이 만약 안개가 아니고 제 눈에 영구적인 손상이 있어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는 것이면 어떡하지?하면서요.
그리고,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다시 건강을 찾고 쓰러지기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달, 가족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의 가장 아래를 향해 갔어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포에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는 물줄기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위마저도 산산이 부서지는 엄청난 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부서져 새롭게 태어나는 공간을 마주합니다.
폭포 뒤 가장 아래는 떨어지는 물과 솟아오르는 물, 회오리치는 물로 뒤엉켜 어마어마한 힘이 만들어졌어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다 생각된 그 순간의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산산이 부서져 떨어진 물들이 모여 새로이 강줄기를 이루듯, 제 삶은 아이가 쓰러진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어요. 겉보기로는 타임슬립을 하여 아이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삶이나,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삶이 되었어요.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고, 그렇기에 삶의 희로애락 앞에서 충분히 감사히 덤덤할 수 있어요. 무례한 사람을 만나고 유쾌하지 않은 일들 속에 던져지더라도, 에너지를 그곳에 쏟기보다 내게 소중한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순간들을 모아 그저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희생을 희생이라 부르지 않고 기꺼이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게 되는 삶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이의 병을 발견하던 그 순간부터 무릎 꿇고 절망하던 시절의 병실에서 쓴 모든 글까지 정말 날것의 글들을 하나하나 만지며 시간을 건너왔어요.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글을 쓰던 시절 뒤에, 살금살금 올라오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던 시절도 분명 있었습니다. 글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현재는 '글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글을 몸 안에 새기는 시간을 살고 있지요.
눈을 뜨면 아이가 건강히 제 곁에 있음이 실로 커다란 기적입니다. 긴 인생의 시간 속에 아이가 또다시 아프게 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겠습니다. 하루를 사는 여자임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전에는 매일매일 긴장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여유 있고 아름답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있어요.
담담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살며 만나는 모든 것들에 숨어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으며, 아름다움으로 남은 생을 채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