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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도 May 02. 2021

스톰트루퍼 헬멧에 얽힌 이야기

스타워즈 내 가장 ‘평범한’ 캐릭터 뒤에 ‘복잡한’ 사연


프렌차이즈의 아이콘

제국의 충성스러운 보병 스톰트루퍼는 이제 스타워즈 세계관 내에서 가장 전설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흰색과 검정색이 절묘하게 배색되어 있는 이들의 아머 디자인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시무시한 맹위(?)를 떨치는 제국군의 시그니쳐이기도 하지요. 사실, 스타워즈 스톰트루퍼 헬멧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까사밀라 건물 굴뚝에서 그 디자인의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스톰트루퍼는 제국의 일반 보병을 넘어선 스타워즈 프렌차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스톰트루퍼 헬멧의 모티브가 된 가우디의 ‘까사밀라’ 지붕위 굴뚝


허나, 그러한 영향과는 별개로 스타워즈 내 수많은 캐릭터들처럼, 스톰트루퍼의 디자인 또한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왔습니다. 스타워즈 첫 에피소드에서 탄생한 스톰트루퍼 헬멧은 ‘보바펫’ 헬멧의 모체이기도 하며, 프리퀄의 클론군대, 시퀄의 퍼스트오더 등과 같은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거치며 그 긴 역사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캐릭터들의 헬멧 변천사는 곧 스타워즈의 역사인 동시에 영화산업 내 소품역사를 방증한다.


단연,  스타워즈 내 캐릭터들을 총체적으로 창조해낸 조물주는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이지만, 스타워즈 세계관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랄프 맥쿼리(Ralph McQuarrie)는 절대로 빠질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사실, 맥쿼리의 최초 컨셉아트에서의 스톰트루퍼는 제다이를 대신하여 라이트세이버의 주인이 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루카스의 초기 구상에 따르면- 한솔로가 주무기로 라이트세이버를 사용하게 하고, 그에 맞서 제국의 병사인 스톰트루퍼의 손에도 똑같은 무기를 쥐게 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데스스타를 탈출하고 있는 한솔로 일행들이 스톰트루퍼들과 맞닥뜨리면서 라이트세이버 듀얼을 앞두고 있다. (In Mcquarrie’s Concept Art)








스톰트루퍼의 어머니, 리즈무어 (Liz Moore)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초기 컨셉아트를 근간으로 스톰트루퍼의 헬멧과 C3-PO의  내외관 조형을 창조한 그 중심에는 조각가 리즈 무어(Liz Moore)가 있습니다. 리즈무어는 스타워즈 이외에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및  ‘시계태엽 오렌지’ 에서도 조형을 맡았습니다.

 

스톰트루퍼 헬맷 및 C3PO 조형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는 리즈무어 (Liz Moore)

C3PO 역의 앤서니 다니엘스는 ‘사랑스럽고 재능있는 조각가 리즈무어는 나의 전신 석고상의 표면에 점토 모델링을 더하여 지금의 멋진 C3PO 디자인을 창조해냈다.’ 며 그녀를 회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리즈무어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스크린관에서 직접 보지도 못한 채, 1976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리즈무어가 제작한 C3PO 조형 모델링
리즈무어와 그녀가 만든 스톰트루퍼 헬멧 조형








스톰트루퍼 법적 분쟁 (Stormtrooper Lawsuit)

그리고 이렇게 원래의 주인을 잃어버린 스톰트루퍼 헬멧의 저작권을 두고, 루카스 필름과 영국의 ‘아인즈워스 (Ainsworth)’ 라고 하는 주형가 (moulder)간에 법적 공방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루카스 필름이 스타워즈 제작을 위해, 영화제작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영국으로 간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몰딩 주형가 아인즈워스 (Ainsworth)

당시 랄프 맥쿼리의 스톰트루퍼 컨셉 디자인을 바탕으로 리즈 무어는 헬멧의 조형을, 브라이언 뮤어 (Brian Muir)은 아머의 조형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루카스는 이들의 조형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몰딩을 설계하는 것을 고심하고 있었고, 당시 여러 영화 소품이 제작되던 세퍼턴 스튜디오 (Shepperton Design Studios) 근처에서 복합재료 및 플라스틱을 이용하여 카약 몰딩을 개발하고 있던 ‘아인즈워스’ 는 우연히 이 스톰트루퍼 헬멧 및 아머의 조형 몰딩을 맡기게 됩니다.


세펀트 스튜디오 (Shepperton Studio) 앞에 생산된 스톰트루퍼 헬멧 양산품들

그의 양산품에 꽤나 만족했던 루카스는 곧바로 추가 생산을 요청하였고, 이렇게 태어난 스톰 트루퍼 헬멧이 바로 스타워즈 시리즈 상 처음으로 등장하였던 오리지널 스톰트루퍼 헬멧이 됩니다. 그리고 세월은 3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아인즈워스는 본인이 제작했던 몰드를 다시 꺼내어 헬멧을 제작 및 온라인 상으로 상업적 판매까지 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알게 된 루카스는 곧바로 법적 소송에 들어갑니다.









산업디자인이냐, 예술조각품이냐

미국 법원은 아인즈워스가 지적 재산권을 소유하지 않았고 이를 판매할 권리 또한 없기에 20만 달러를 손해 배상해라며 루카스 필름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정작 아인즈워스의 스튜디오 및 자산은 미국이 아닌 영국에 있었기에, 법정싸움은 영국으로 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후, 영국에서 시작될 소송의 승패는 이 스톰트루퍼 헬멧이 과연 '산업 디자인 (Industrial Prop)'인지 아니면 '조각품 (the Work of Art)'인지를 증명하는 것에 달려 있었습니다.

두가지 스톰트루퍼 프로토타입 조형물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조지 루카스 (왼쪽이 리즈무어가 제작한 헬멧 조형물이다.)

즉, 이 영화 소품으로 쓰인 조형이 '조각품' 이라면 조각가 (리즈무어)의 생존기간 뿐만 아니라 사후 70년동안 디자인 저작권이 보호받게 되지만, '산업 디자인' 일 경우엔 시장에 나온지 최대 15년 동안만 저작권 보호를 받게 되기에 즉, 이미 1978년으로부터 만기가 지난 현재 아인즈워스에게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가 정당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조지루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그리고 피터잭슨과 같은 거장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스톰트루퍼 헬멧은 '산업디자인'이라는 영국 대법의 판결에 따라, 영국인 주형가와의 기나긴 싸움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영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각’이라는 용어를 영화제작에서 사용되는 헬멧 소품에 적용하는 것은, 일상적 언어 사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영화의 예술적 효과에 크게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제국군의 컨셉을 창조한 상상력’때문에 그 ‘조각’이라는 용어를 제국군의 헬멧에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스타워즈라는 영화 그 자체만이 예술작품 (the work of art)에 해당하며, 그 영화에서 소품으로 사용된 헬멧은 그 영화의 제작 과정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 단지 ‘실용적 결과물 (practical outcome)’일 뿐이다.

영국의 법종 최종 판결로 인해, 스톰트루퍼 아머 디자인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유자산 (public domain)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판결은 할리우드 영화계에 많은 후폭풍을 불러 일으킵니다.



A Lucasfilm spokeswoman said: "We believe the imaginative characters, props, costumes, and other visual assets that go into making a film deserve protection in Britain. The UK should not allow itself to become a safe haven for piracy."
루카스필름 대변인이 말하기를, “우리는 영화 내 상상력이 풍부한 캐릭터들, 소품들, 의상들, 그리고 그외 모든 시각적 자산들이 영국 내에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국은 이 모든 것들이 해적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George Lucas and his Hollywood supporters also argued the ruling posed a "significant threat" to the UK film industry as film-makers would be deterred from using UK propmakers for fear of copyright infringement.
조지 루카스와 그의 할리우드 지지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영화 제작자들이 저작권 침해를 우려하여 영국내에서의 소품 제작자들과 일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영국 영화 산업에 "중대한 위협"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Lucas loses Star Wars copyright case at Supreme Court” in BBC News July 27, 2011



사실, 영국대법원은 이전에도 저작권위반에 관하여 상당히 관대하고 파격적인 판례를 많다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스톰트루퍼 헬멧을 두고 일어난 이 모든 분쟁의 시작은 당시에 영화계 내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진 ‘악수 및 구두상 (on a handshake and word of mouth)’의 계약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편 이후로 이러한 잡음이 지금까지 없었던 걸로 보아, 가장 성공한 프렌차이즈에 걸맞게 이러한 저작권에 관해서 문제가 되지 않도록 관리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스톰트루퍼 헬멧, 너 산전수전 많이 겪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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