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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도 Dec 28. 2021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 영웅 서사의 완성과 시작

‘다정한 이웃’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였기에.



———— SPOILER ALERT!!————

(해당 리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팬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개봉 이전부터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역을 맡았던 ‘토비 맥과이어’부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류 가필드’의 출연 여부를 두고 끊임없는 루머가 돌았죠. 하지만 무성하기만 했던 소문의 뚜껑을 막상 열어보니, 단순히 역대 스파이더맨들 모두 불러다 놓고 역대 모든 빌런들과 한 번 맞붙게 해 보자는, 소위 모두가 어림짐작만 했던 스파이더맨 ver 어벤저스는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각기 다른 추억을 선사해준 피터 파커들이 겪은 상처들을 어루어 만져주고, 말 많고 탈도 많았던 프랜차이즈를 여기까지 잘 헤쳐온 스파이더맨이란 캐릭터에게 바치는 숭고하고도 겸허한 헌사였던 것입니다.





추억을 넘어서

여러 번의 리부트를 거쳤던 이전 시리즈들부터, 마블과 소니의 끊임없는 불화로 인해 불투명했던 프랜차이즈의 미래까지,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던 제작과정이 늘 함께 했습니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그간의 이러한 ‘어른의 사정’들로 미뤄뒀던 팬들의 오랜 염원과 꿈을 채워주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고, 팬들에게 뒤늦은 사과와 선물을 함께 전하겠다는 의도를 구태여 숨기지 않습니다.


소니와 마블 사이에서 바람잘 날 없었던 스파이더맨들…



영화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를 그때  시절의 모습으로 데려오질 않았습니다. 안티 에이징 기술까지  가면서 그때  영화  모습 그대로 불러낸 빌런들에 반해, 피터들은 그간의 세월이 묻어난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찾아옵니다. 그동안 우리가 나이 들었던 만큼, 한때는 아이였던 그들 역시 어느새 어른이 돼버린 것이죠.  이유는  작품이 그저 과거를 추억하는 영화이기만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과거 시리즈들의 추억들을 곳곳에서 오마주로 소환해낼 뿐만 아니라, 미처 매듭짓지 못했던 이야기들마저도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완성시켜 버립니다. 마치 이전 스파이더맨들의 오래된 ‘ 풀어주는 의식 같다는 생각이  정도로.


그러니, 한편으로 영화는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된 피터가 아직은 배울게 많은 어린 피터에게, 그리고 시리즈를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 돌아온 피터처럼 어느새 아이에서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바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세컨드 찬스’, 두 번째 기회를 통해서 말이죠.


톰의 피터처럼 이런 앳된 모습으로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들도 우리와 함께 시간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기회: ‘치유’와 ‘성불’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악당들은 각기 다른 세계에서 스파이더맨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정신적으로 유린하며, 서로를 죽고 죽인 관계들입니다. 닥터스트레인지는 이들을 스파이더맨과 싸우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존재들로 규정하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톰 홀랜드의 피터는 이들을 불러내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영화는 빌런들을 아픈 사람들, 그러니까 치유가 필요한 이들로 정의하고, 치유될 수 있다는 것, 즉 악당의 모습은 그들의 원래 본성이 아니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악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본성으로부터가 아닌, 피할 수 없었던 상황과 사고들이었고, 그들의 죽음 또한 필연적 운명이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가능성, 제2의 기회, 세컨드 찬스입니다.


식스 시니스터로 대표되는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은 피터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몽’ 그 자체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기회를 건넨다.



이 영화는 피터 파커에게 있어서도 두 번째 기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앤드류의 피터는 떨어지는 엠제이를 구해내면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웬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치유합니다. 고블린을 죽이려 덤벼든 톰의 피터 앞을 막아서는 것은 다름 아닌 토비의 피터입니다. 다른 세계의 또 다른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을 또 한 번 반복되게 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빌런들 모두 피터로 인해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들 또한 비로소 지금에 와서야 치유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미치도록 잡고 싶었을까…..



그렇게 지난 원한과 상처를 이겨낸 끝에, 피터는 닥터스트레인지에게 최후의 주문을 요구하고, 또 다른 피터들과 빌런들은 빛과 함께 영원한 작별을 고합니다. 빛을 내며 환하게 흐릿해져 가는 이들의 모습은,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해방되어 마침내 ‘성불’에 이르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간 서로를 지배했던 괴로운 관계를 청산하고, 지난 해묵은 원한마저 떨쳐낸 채, 밝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이들, 그리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를 선택하는 피터 파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이를 용서하고,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들과도 모두 이별하기로 하는 그의 희생은,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다정한 이웃’으로

어쩌면 피터의 희생은, 엔드게임에서 죽음을 받아들인 토니 스타크의 희생과 비견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의 희생에서 가슴을 더 뜨겁게 하는 고결함 같은 게 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추억들 마저도 모두 이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내일을 계속 살아가겠다는 것. 자신의 힘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오늘도 내일도 창 바깥으로 언제든 나설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엠제이 앞에서, 눈물을 머금으면서도 어딘가 희망찬 표정을 의연히 짓고 있는 피터가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피터의 앞날에 엠제이가 함께 할 수 있을까



호의를 베푸는 피터와 친구들에게 닥터 오토퍼스는 ‘왜 죽을 운명을 지닌 우리들을 그냥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거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에 엠제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냥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피터는 세상에서 잊혔지만, 엠제이와 네드 그리고 피터의 고결한 심성-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인간다움은 온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결이 비슷한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언젠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함께 다시 써 내려갈 것입니다. 피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엠제이의 표정이 그러한 미래를 말해주고 있지요. 그러니, 세상이 피터를 잊었다 해도, 앞으로 우리는 그를, 스파이더맨을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뻔한 슈퍼히어로 장르임에도, 이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피터 파커의 ‘선함’, 누군가의 도와달라는 말에는 군말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다정한 이웃이니까요.



톰의 피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세컨드 찬스를 통해 홀로서기에 성공했습니다. 그간 MCU의 스파이더맨이 가지고 있던, 아직은 미숙하고 귀여운 막내의 이미지, 토니 스타크의 그늘이 여전히 필요할 것 같은 소년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져 버리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는 의미의 ‘No way Home’. 피터에게 유일한 집이었던 메이 숙모와 네드 그리고 엠제이가 없어진 지금에서야, 피터는 그간 익숙했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모습으로 우리들의 집에 돌아왔습니다. 피터가 자신이 얻은 작은 월세방으로 들어올 때, MCU의 스파이더맨이 이제서야 우리가 알고 있던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왔다는 걸 직감하는 순간입니다. 더 이상 어벤저스의 소년이 아닌, 제2의 아이언맨이 아닌, 전보다 훨씬 더 성장한 스파이더맨으로, 홀로 선 한 인간으로서의 영웅으로 말이지요.


더이상 메이 숙모의 집도, 토니의 집도 아닌, 진짜 피터 파커가 살 것만 같은 집으로.


피터 파커가 손수 한땀 한땀 만든 슈트란?







이제 피터는 더 이상 토니가 만들어준 첨단 슈트를 입지 않고, 재봉틀로 슈트를 직접 만들어 입습니다. 그 슈트는 역시나 클래식 스파이더맨의 슈트를 많이 닮아 있지요. 이것은 자신의 날개로 토니의 둥지에서 날아 올라 진정으로 ‘독립’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더 이상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기술력 없이 싸워나갈 피터의 슈트는 앞으로 헤지고 찢겨 나갈 날이 많을 것입니다. 돌아온 영웅 서사의 새로운 시작이 반가운 한편, 내심 미안한 마음과 여운이 이리도 오래 남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가난하게, 외롭게 살아갈 피터의 앞날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그만 책상 위에 무전기를 두고, 곤란에 빠진 이들을 돕고자 기꺼이 창 밖을 나서는 피터— 그의 발걸음에 많은 위안을 얻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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