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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Apr 05.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69. 적응의 시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오는 3월이 되면 새 학교에 입학하고, 새 학년에 적응하고, 새 직장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이 쏟아집니다. 큰 일교차와 종잡을 수 없는 꽃샘바람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시기입니다. 적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입사하던 때, 학교에 입학하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대단히 하는 일이 없어도 매일 이상하게 피곤합니다. 어깨에는 긴장이 가득하고 표정도 굳어있습니다. 저는 오래 근무했던 모교 병원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직책으로 근무를 시작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전문의도 따고 나름의 실력도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적응은 별개의 일이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는 일들을 앞에 두고 씨름했던 기억이 납니다. 누가 제게 큰 업무를 맡기는 것도 아닌데, 항상 너무 피곤했어요. 퇴근하고 9시간 이상은 잤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날들이 두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사람도 익숙해지고 업무도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그 두 달이 참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적응은 주변 환경에 적합해지도록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나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내가 적응하기 쉽도록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며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고 상황을 정립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찾아나가는 것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적응 과정'을 간과합니다. 특히 한 곳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일수록, 적응의 기억이 오래되서일까요, 적응에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서 보니 나이가 어릴수록 적응에는 에너지가 덜 사용되고, 나이가 많을수록 적응에 시간과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새롭고 낯선 곳을 즐기는 성격이라면 적응이 덜 힘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이전에 오래 해왔던 일을 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일은 아닙니다. 


  4월이 되었습니다. 새 환경에 적응은 되셨나요? 아직 적응이 덜 된 것 같다면, 원래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충분히 자고 영양가 있는 좋은 식사를 하며 잘 지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벌써 적응을 잘하셨다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멋지게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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