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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Apr 12.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70. 쉽고 빠른 소비의 시대

  여러분은 지출을 잘 통제하고 계시나요? 무한정 돈을 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돈이 무한대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어딘가서 '여기서 멈춰'라는 신호를 스스로에게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멈춤'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용카드가 그렇습니다. 카드사에서 문자가 날아오지만, 통장 잔고는 그대로 있습니다. 물건은 내 손에 들어왔지만 돈도 그대로 있는 셈이지요. 잊을 만하면 날아오는 카드론 문자, 대출 광고 문자도 우리의 마음을 쉽게 들었다 놨다 합니다. '클릭 한 번으로 000만 원까지 대출 가능'과 같은 문구를 보고 있자면, 돈이 급하면 여기 연락할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겠구나 싶습니다. 거기에 수시로 메신저에 꽂히는 쇼핑몰의 할인 쿠폰과 이벤트 알림은 '이게 정말 필요했나'를 생각하기 전에 '이거 사야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게 합니다. 쇼핑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모델이 아름다운 배경 앞에서 '그 물건'을 들고 자유롭게 포즈를 취하는 사진의 쓰나미를 만나게 됩니다.

  '당신도 이걸 가지면 이렇게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어요!‘

  '당신 삶의 부족함은 이걸로 채울 수 있어요!‘

  '이거면 충분해요. 지금 이걸 사요. 부담스럽지 않게 할인 쿠폰도 챙겨드릴게요!‘

  ’당신은 이걸 가질 가치가 있어요!‘


  쇼핑몰 페이지가 아닌 SNS에서는 쇼핑몰 모델보다 훨씬 친근한 사람들이 '저도 이걸 써요' '이거 정말 괜찮던데요'라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렇게 장바구니에 들어간 물건은 빠르게 결제창으로 연결됩니다. 카드 번호 16자리를 넣던 것은 과거 일이 됐습니다. 이제는 00 페이로 숫자 몇 개 누르면 바로 결제가 완료됩니다. 그리고 2-3일이면 문 앞으로 물건이 배달됩니다.

  카드값은 뭘 샀는지 잊을만해지는 먼 미래에 청구됩니다. 물건을 사고 후회를 해도, 후회의 불쾌한 기억보다는 쇼핑몰 페이지에서의 유쾌한 기억, 선망의 느낌이 훨씬 오래가기 때문에 다음 달에 카드값 고지서를 받았을 때는 이미 후회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립니다.


  인터넷 시대,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오면서 소비는 훨씬 쉽고 빨라졌습니다. 단지 쉽고 빠른 것 이상으로 우리의 뇌를 'hook'합니다. 온갖 핑계와 이유, 합리화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이번달 일하느라 힘들었잖아, 스트레스받았잖아, 남들도 이만큼 쓰는데 너도 당연히 이만큼 쓸 가치가 있는 존재야.


  그런데 말이에요. 반드시 그 물건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의 가치가 그만큼 상승할까요? 일시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즐거움을 즐기고요. 하지만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고, 나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주는지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쇼핑몰은 우리 뇌의 이러한 맹점을 잘 알고 있어서, '지금 바로 사야지 할인돼요!' '한정판매예요. 지금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아요.'와 같은 메시지로 우리가 그 순간에 의사결정을 모두 내리도록 합니다.


  소비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다만 현명하게 소비하고 계신가요? 우리의 지갑을 더 빨리, 더 많이 열게 만드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비의 결과는 온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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