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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29. 2024

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프롤로그: 두 번째 육아휴직을 결정했습니다.

  의사 업계는 출산과 육아에 비정하기로 유명하다. 출산휴가 3개월을 주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이며, 이마저도 월급 보전이 안 되는 곳이 태반이다. 대학 병원을 제외한 많은 병원에서 무급 휴직을 권고한다 (권고라고 쓰고 강요라고 읽는다). 놀랍게도, 재고용을 보장해 주고 (일시적인) 퇴사를 권고하는 곳도 있다. 업계의 이런 특성 때문에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의사 엄마들은 출산 전날까지 일하고, 출산 후 90일이 지나면 바로 출근한다. (이마저도 90일을 다 쉴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할 수 없는 엄마들은 일을 그만둔다. 많은 의사 엄마들이 출산 후 파트타임 일자리로 옮겨가고 생각보다 많은 의사 엄마들은 전업 육아에 머무른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 재취업 여건이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월급을 온전히 보전받는 출산휴가와 고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육아휴직을 엄마가 된 의사들이 쓸 수 없다는 것은 의사이면서 엄마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경력 단절에 취약해진다는 의미이다.


  한편 나는 첫째를 임신했을 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합쳐 1년간 쉬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주변의 의사 친구들과 의사를 지인으로 둔 사람들은 매우 부러워했다. 그들은 입을 모으기라도 한 듯 '그렇게 좋은 병원이 있어? 정말 부럽다. 절대로 그만두지 마.‘라고 이야기했다. 봉직 의사도 고용된 근로자일 뿐인데 왜 무급 출산휴가도 감지덕지, 육아휴직은 기적인 것처럼 치부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업계의 오랜 관행이었으며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현실이었다.


  나에게 병원에서의 일은 고되지만 보람되고, 힘들지만 의미 있다. 학회에서 공부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계속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를 임신하고 다시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두 아이를 함께 봐주시는 시터를 구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엄마 밀착형 첫째에게 둘째가 충격일 텐데, 다시 내가 풀타임으로 출근해도 괜찮을까? 이참에 전업으로 돌아설까? 파트타임으로 옮겨갈까? 그런데 잠깐. 난 출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데... 여기서 하는 내 일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휴직을 허락해 줄까? (휴직을 허락한다니, 쓰면서도 말도 안 되는 워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업계의 현실이 냉정하고 가차 없게 느껴졌던 것 같다.)


  고민 끝에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년을 붙여 1년 3개월의 휴직 신청서를 원장님께 제출했다. 여기서 계속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휴직을 신청하는 것이라 말씀드렸다. 1주 후, 휴가를 승인받았다.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점점 불러가는 내 배를 보며 다들 '둘째를 낳기로 한 것은 너무 잘했다. 정말 대견하다. 출산 잘하고 꼭 돌아와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니 그리 비호의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렇게 ‘기적’처럼 1년 3개월의 휴가를 받았다. 지금부터 1년 3개월 동안, 나와, 첫째와, 둘째와, 남편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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