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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 2021, 박송열


숨쉬기를 의식하는 묘한 불편함으로부터
- 서너시

부부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몹시 맛있어 보인다.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한 입, 상추 위에 깻잎을 올린 다음에 고기 한 점을 집어서 또 한 입. 그리고 소주 한 잔까지. 음식이 먹음직스러운 것과 별개로 부부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두 사람 모두 '일자리 공백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단기로 여러 일을 해온 부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부모님께 드릴 용돈은커녕 당장 각종 생활비와 보험료 등으로 나갈 돈도 빠듯하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될 위기에 처한 이들 부부는 구직을 위해 노력하는데, 중간중간 무언가 먹으면서 한다. 과자, 생강, 스무디, 꽈배기 도넛… 적어도 굶주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보여주는 가난은 극단적인 굶주림, 육체적 한계 상황, 피와 폭력 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머니께 받아온 생강, 불편한 대화 끝에 반 정도 남긴 회, 술과 달리 프레임 바깥으로 치워진 안주가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심리적 여유를 잃어가다 결국엔 어머니의 도움을 받게 될 이들 부부의 가난을 은근하게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가난과 구직 활동 속에서 부부가 느끼는 압박감은 소파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숨을 쉴 때 오르락내리락하는 상체의 정적인 움직임 속에 묻어난다. 한숨에 가까운 깊은 호흡은 어딘가 답답하고 불편하며 오래 이어지고, 무늬 없는 단색의 벽지는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몸을 강조하면서 고함과 눈물보다 더 무겁게 그들의 고단함을 전달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빚을 지고 있다거나 당장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의, 태평한 것처럼 보이는가 싶다가도 아슬아슬한 어떤 가난이 여기에 있다. 심지어 사채업자가 자진해서 이자를 받지 않고 어머니가 대출 원금을 대신 갚아주는 상황에서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카메라를 팔아버린 형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백만 원을 돌려준 만큼 행복한 동화에서처럼 착한 부부에게 '마법'이 일어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않는 이상 가난은 계속된다. 어떤 가난은 바로 그런 성격을 가진다.  


잘 먹고 잘 사는 법
- 난둘

마땅한 직업이 없다. 그렇다고 직업 구하기에 혈안이 된 것 또한 아니다. 두 사람은 정기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을 일자리를 찾으면서도 그 일에 혹사당하고 싶지 않아 한다. 배달 혹은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부당한 행위에는 저항할 줄 안다. 생활비가 부족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도, 사채업자가 어머니의 집을 찾아와 어머니가 그 빚을 대신 갚아도, 언젠가는 그 돈을 꼭 갚겠다고 다짐하지, 자신의 현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매일같이 돈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돌파구를 찾지 않는 것. 돈이 부족해도 삼겹살을 구워 먹고, 회를 사 먹고, 간단한 안주에 소주를 마시는 것. 갑작스러운 사고나 노후를 위해 여유 자금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나로선, 이 묘하게 불편한 영화의 현실이 역설적으로 사뭇 편안해 보인다.

어떻게든 살아가면 됐지. 영태 말대로 삶의 질은 중요하잖아.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영태 역할을 맡은 박송열이 연출을, 정희 역할을 맡은 원향라가 제작 및 편집을 담당했다. 두 사람이 모든 역할을 해 만들어 낸 영화는, 당연히 많은 스태프가 참여해 낸 영화보다 얼기설기 완성돼 있다. 예를 들어, 정희 어머니의 생일파티가 끝난 후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때, 영화의 카메라는 길거리를 걸어가며 대화하는 두 사람을 패닝 하지 못한다. 패닝을 할 카메라맨이 카메라 앞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길을 걷던 두 사람이 각각 카메라 앞에 멈추어 설 때, 카메라는 각자에게 완벽히 포커스를 맞춘다.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두 사람이 카메라에 들어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마스킹하고, 그 마스킹에 그대로 서 대사를 하고, 초점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을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부족하지만 부족한 대로 만들어 진심이 보인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만듦새는 이 영화의 완성도(혹은 완벽함)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영태와 정희의 삶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매끄럽지 않은 삶을 매끄럽지 않게 만들었기에, 그러한 삶을 긍정도 비난도 하지 않고 담백하게 바라보기에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제목처럼 오롯이 영화의 현실이자 영화 바깥 (모두의) 현실을 담아낸다.


영화는 영화가 된다 
- A

작은 것은 한 번에 담기지 않는다. 그것들은 한 번에 담기리라 너무 쉽게 생각되지만, 제멋대로 집어삼켜질 리 없다. 항상 먼저 와 기다리는 카메라가 있다. 지연되거나 혹은 동시적이거나, 이 같은 액션에서 비롯되는 영화의 리듬은 가난한 부부의 삶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화폐의 물신화는 얼굴의 물신화로 옮겨진다. 구태의연한 상황에서 구태의연함으로 맞받아치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눈짓은 상황을 정지시킨다. 휩쓸려갈 때면 잠에 든다. 부표처럼 떠있지만 정박해 있다. 가난은 부부를 집어삼키지 못한다. 영화는 한 번 움직인다. 사랑하는 이의 눈물을 차마 그냥 보내지 못하고 따라간다. 긴 터널의 끝에서. 작은 집은 분할되어 있다. 각자의 방과 벽에서 독백처럼 이어지는 대사는 단절이 아니다.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듣는다. 해가 져갈 때, 남들이 다 잠든 밤에, 잠들어 있고 잠들지 못한다. 작은 집에서, 작은 집의 문지방에서 오도 가도 못한다. 아무도 없는 새벽 오도 가도 못하는 길에서 그들은 상황에 집어삼켜지지 않는다. 비가 내리던 영화에 비가 그친다. 맑은 날씨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여자에게는 한 번도 비가 오지 않는다. 상황은 사람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봉투에 담긴 돈이 오간다. 60장의 지폐를 한 장씩 센다. 돈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돈은 전기가 되고, 먹을 것이 되고, 시간을 만들어 낸다. 물신은, 마치 진주를 만들어내는 굴 속의 모래알처럼, 억지스러운 지점에서 사회적 정신 혹은 성애적 마음을 괴롭히는 사물의 사회적이고도 성애적인 구성물을 만들어낸다 (로라 멀비, 물신과 호기심, 3). 물신은 영화 스크린 위에 떠오르지만, 과잉의 이미지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폭력으로 점철되지 않는 쇼트의 의미의 과잉적 명확성은 물체의 지시를 상실시키고 사물은 사물이 된다. 사람은 사람이 된다. 사랑은 사랑이 된다. 영화는 영화가 된다. 


[3시부터 5시까지의 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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