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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Mar 28. 2024

봄날의 코코아, 한 잔 하실래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최근 읽고 있는 책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요즘 내 관심사는 단연 '행복한 삶'이다. 모닝커피를 내릴 때,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 조용한 집에서 맘에 닿는 책을 고를 때, 하루에도 수없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을 만난다. 역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봄맞이 옷장정리를 하고 나니 주방 수납장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눈길도 안 주던, 아니 일부로 외면 중이던 찬장이 오늘이 그날이라며 신호를 보냈다. 미뤄뒀던 정리를 할 때가 왔다. 먼저 하부장을 열어 안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 일회용 종이컵, 키친타월, 김,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간식들, 참치캔, 가습기, 손전등, 박스 테이프까지 집을 잘못 찾은 손님들이 가득했다. 그중에 눈에 띈 '허쉬 오리지널 핫초코'는 올해 괌여행을 같이 다녀온 돈독한 사이다. 콜라도 오렌지 주스도 마시지 않는 딸의 최애 음료는 바로 핫초코다.




웬만하면 집에서는 과자나 단 음료를 주지 않는 편이다.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아서 버릴까 고민하다가 딸을 불렀다.

"사랑아, 우리 핫초코 마실래?"

"응응!!!"

어릴 적 과자종합선물세트를 받고 좋아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핫초코가 그렇게 좋을까. 딸아이 얼굴에 무지개만큼 영롱한 웃음이 피어났다.

"엄마는 뭐 마실 거야? 엄마도 핫초코 마실래?"

달디 단 커피는 마셔도 농도 짙은 핫초코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미소와 함께 핫초코 한 봉지를 건네는 너를 보니 갑자기 입맛이 바뀌었는지 달큰한 코코아 향이 오늘따라 싫지 않.




"사랑아, 우리 베란다 문 열고 마실까? 추운 날 먹어야 제맛이지~"

우리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컵을 조심스레 들고 베란다 앞으로 갔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공기에 핫초코의 온기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베란다 앞에서 아직 쌀쌀한 봄바람을 맞으며 담요를 나눠 덮은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마음이 넉넉해짐을 느낀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향에 모든 근심과 걱정이 녹아드는 기분이다. 이 순간을 붙잡고 또 붙잡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하얀 이가 갈색이 줄도 모르고 활짝 웃는 너를 보고 있자니 행복은 가까이에 있단 걸 새삼 깨닫는다. 행복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기다리기만 한다고 저절로 찾아오진 않는다. 고작 유통기한이 일주일 남짓 남은 핫초코 한 잔에 이토록 완벽한 행복이 숨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찬장 잊고 있던 코코아를 찾아내듯, 바쁜 삶 속에 지나쳐버린 무수히 많은 행복들을 찾아서 소중히 여긴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숲에서 보내는 하루 동안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선물이고 기적임을 배워요."

- 곰돌이 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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