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중앙, 남포, 영도, 자갈치
몇년 전부터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는데, 정작 부산 출장은 처음이다. 막상 가려니 설레는 마음이 되었다고 해야할까.
본래 영진돼지국밥을 좋아하는데, 출장길과 동선이 맞지 않았다. 부산역에 내려 본전국밥에 가봤는데, 왠일로 줄이 길지 않았다. 본전의 수백은 처음이었는데, 별도 접시로 고기를 내주고, 정작 국 안에는 고기가 없다. 토렴도 하지 않는게 아무래도 외지인 전용이 되려는건가.
그냥 국에 다 말았는데, 십여 년 만에 맛본 본전은 여전했다. 깔끔한 맛을 좋아한다면 이쪽이 낫겠다.
일이 끝나고 모처럼 시간이 남았다. 호텔에 짐을 던져두고 좀 걸어볼까 생각이 들었다.
제주올레를 다녀온 후 걷기의 미덕을 새삼 느낀다. 차를 타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걸으면 보인다. 느림의 미학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차이나타운을 지나 중앙동으로, 남포동으로, 그리고 영도로 방향을 잡았다.
정말 오랜만인데, 그나마 덜 변했다고 해야 할까. 만두값이 오른 것 외에는 여전히 이질적이고 번잡한 풍경이 익숙했다.
중앙동 뒷길도 오랜만이다. 여전한 풍경들과 난개발이 진행 중인 풍경이 뒤섞이고 있다. 최근 중구의 대표 관광지로 밀고 있다는 40계단을 구경하러 갔다.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다고는 하나 풍경은 찾을 수 없었다. 위쪽 건물이 눈길을 끌어 계단을 올라봤다.
낡은 것은 아름답다. 물론,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안개비처럼 내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졌다.
만신 옷이 걸린 세탁소를 발견했다. 벽의 그림도 범상치 않다. 결국 사라질 장면들일거다.
창신동 윗골목이 떠오르는,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고는 하나, 센텀 쪽을 제외하면 낡은 풍경이 더 많은 곳이다. 옷집은 여전히 영업중인 것 같았다.
무심히 영도대교를 건너다보니 부산대교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저 다리를 한번도 건너지 못했다.
영도에서 본 영도대교는 어릴 적의 기억과 좀 달라보였다. 기억이 희미하니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알 방법이 없다.
다리 아래에서 발견한 조각. 회전목마를 끄는 말이라.
어지간히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아니, 무척 많이 변했을텐데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든 반가운 풍경이다.
최근 들어선 예쁜 카페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오래된 공간이 더 눈길을 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시간의 상처가 남아있는 배들.
묘한 것을 만들어둔 전망대와 항구의 풍경.
영도에서 본 부산.
모모스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길게 이어진 풍경이 맘에 들어 몇번이고 와보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모모스의 옆 벽은 처음 본다. 이런 그림이 있었구나.
저녁에 커피 약속이 있어 모모스에는 잠시 들르기만 했다. 미안해서 원두라도 살까 하다가, 지난번 왔을때 커피를 여러 잔 주문했던게 기억났다. 오늘은 죄송합니다.
집밥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영선동이 생각났다. 어릴적 지내던 곳인데, 장지문을 열면 바로 길이 나오던 곳이었다. 영도에 올때마다 가볼까 생각했지만, 정작 실행하지는 못했었다. 오늘은 가볼까.
어림잡아도 40년이 지났다. 당연히 다른 풍경이 되었을거라 생각했지만, 집이 있던 자리에는 상가가 들어섰다. 기억속의 낡은 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조차 남아있지 않은 장면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역시 술을 마셔야 하나 싶어졌다.
다시 영도대교를 건너는데 빗줄기가 거세진다. 역 앞에 두고 온 우산이 생각났다.
자갈치로 이어지는 길에는 해상공원 같은 것이 조성됐다. 그냥 밀어버리기는 섭섭했던 것일까.
건어물 거리를 지났다. 적산가옥 1층에 자리잡은 현대의 상점들이 묘한 풍경을 보여줬었는데, 화재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뭔가 남겨두는건 어려운 일일까.
인증샷을 찍을 것도 아니면서 습관적으로 남항대교가 보이는 곳을 찾는다. 영도가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신시장 건물이 들어선 오른쪽으로 처음 보는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설마 꼼장어 골목도 없어진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싸고 불결하다고 외면받지만, 꼼장어는 여기서 먹어야 한다.
다행히도 공사판 뒷편으로 몇개인가의 가게가 남아있었다. 사장님, 다 없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여쭤보니 새 건물이 완공되는 내년 가을에 이주할거라고 하신다. 뭔가 남겨두는건 역시 어려운 일일까. 이 골목까지 없어지면 자갈치는 그야말로 관광시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오래된 수산시장도, 내가 꼼장어를 먹을 곳도 없어지는 것이다.
혼자 온 사내가 안쓰러워보이셨는지 소자에 꼼장어 여섯마리를 썰어주신다. 다 먹겠는가? 다 먹어야죠.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웃어주신다.
어쩌면 이 낡은 의자가 더 그리울지도 모른다. 값을 치르며 조금 더 얹어드렸더니 가게 앞까지 나와 손을 잡으신다. 옮기기 전에 한번 더 오소. 옮기믄 연탄불은 없을거니. 알겠습니다, 그 전에 올게요. 돌아서는데 어쩐지 서러운 마음이 되었다. 이 골목을 오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온길을 되짚어 남포동으로, 중앙동으로, 차이나타운으로 걸었다.
이런 가게들은, 어느 순간 남아있는 것만으로 고마운 곳들이 되겠지.
뭔가를 남겨두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낮에 본 차이나타운은 홍등가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전히 흥미가 생기지 않아 그저 스쳐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