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Cebu)는 흔히 호핑투어를 가는 관광지로 알려졌지만, 필리핀 제2의 도시다. 1965년 수도이전 전까지 필리핀의 수도였다. 필리핀에 오래 머물렀지만 정작 세부에 가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산토니뇨성당에 도착했다.
산토니뇨성당은 1965년 이래 세 번 전소했지만, 그때마다 새로 지어졌다. 필리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달까. 현재의 모습은 1737년 이후 유지되고 있는데, 플랑드르식으로 만들어진 아기예수상과 뜰을 가득 메운 수천 개의 촛불로 알려졌다.
마침 성당 광장에서는 복사 수업을 받는 소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산토니뇨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초를 켜기 위해 뜰 안쪽으로 향하니, 사람들의 염원만큼이나 많은 초들이 놓여있었다.
초를 하나 켜고, 사람들 옆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 땅위에 평화를.
뜰을 가로질러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에 잠시 머물다 아기예수를 뵙고 나오는데, 성녀상 앞에서 기도 올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필리핀인들은 이렇게, 성상에 손을 대고 기도한다. 그 절실함이 느껴져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장면이다.
안뜰로 나오니, 형형색색의 풍선을 파는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흔들자 미소지으신다. 사지 않아도 괜찮아. 할머니, 건강하세요.
성당 뒷문을 통해 마젤란십자가를 보러 갔다. 1521년, 세부 해안에 도착한 마젤란이 세운 십자가를 복원해뒀단다.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종교의 힘이 문득 궁금해졌다.
세부대성당에 걸린 거대한 묵주를 헤에 바라보다 산페드로요새로 향했다. 이 모두가 걸어다닐만한 거리라 다행이었다. 어쨌든 필리핀은 꽤나 덥다.
독립광장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름드리나무아래에 숨었지만 어림도 없는 빗줄기였다.
급하게 광장 한구석 정자(처럼 보이는 건물)로 뛰어들어가니 사람들과 댕댕이가 함께 비를 피하고 있다. 쓰다듬어줄까 하다가 관뒀다. 나나 댕댕이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가 잦아들어 요새 안으로 향했다.
마닐라의 포트산티아고 정도를 기대했는데 훨씬 작은 요새였다. 망루에서 바다라도 보려나 기대했었는데, 작은 정원을 걷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마침 핼로윈 행사로 꾸며져있었다.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 두 가지 점에서 놀랐었다. 하나는, 행사 자체가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성대하다는 점이었다.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고 거의 매일 퍼레이드를 했다. 두 번째는 그게 한여름이라는 점이다. 열대지방이다보니 크리스마스가 겨울이 아니다. 그래서 축제도 송크란 같은 물축제를 한다. 신기할밖에.
정말로 저러고 다닌단 말야? 헤에 쳐다보다가 마지막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얄라센터의 한가운에서는 카드게임 토너먼트가 열리고 있었다. 우와 재미있겠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졸리비로 향했다.
졸리비는 필리핀 브랜드인데 맥도날드, 버거킹, 핏자헛, KFC의 메뉴를 그대로 카피해서 더 싸게 내놓는 걸로 유명하다. (최근 메가커피를 인수했다!) 술도 팔고 24시간 영업한다. 그러다보니 주로 2차, 3차에 치맥 먹으러 가듯 다녔던 곳이다. 양이 무척 많다는 걸 잊고 생각없이 버켓을 시켰다가 다 먹지 못하고 두손 들었다.
야외 데크를 걷고 숙소로 향했다.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을 때는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어쩌면) 마지막 필리핀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