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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이 Dec 11. 2023

다시 글쓰기를 결심함

내 영혼의 고향은 읽고 쓰는 일

원고료가 들어왔다.


몇 달 만에 들어온 청탁이었다. 분량 대비 페이도 후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글을 쓰겠다고 회신하고, 마감 기한에 맞춰 원고를 보냈고, 때가 되니 입금까지 차질 없이 이루어졌다. 약속된 고료에서 3.3%를 원천징수하고 난 금액만큼이 깔끔하게 통장에 꽂혔다.


글쓰는 일로 돈을 벌어본 게 얼마만인가? 아니, 글쓰는 일로 돈을 벌지 않은 세월은 또 얼마만큼인가. 스무살 무렵 글을 쓰기 시작해 내 직업은 언제나 '작가(때로는 기자)'였다. 프리랜서 작가로, 글쓰는 업무를 하는 직장인으로 20대를 다 보냈다. 퇴사 이후에도 용케 입에 풀칠할 만큼의 일거리가 주어져, 계속해서 글쟁이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이듬해 팬데믹이 찾아오며 일감이 끊겼다. 일이 없는 프리랜서는 백수나 다름 없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글을 혼자 끼적거리며, 뭐라도 써보려고 노력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당췌 뭘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 이상 서울에 살지도, 직장에 다니지도,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닌 내가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대중적 글쓰기에 익숙했던 나는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서울 한복판에 살 때처럼 민감하게 트렌드를 캐치하거나, 직장생활이나 육아처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할 얘기도 없고 쓸 지면도 없이 방황하는 기간이 어지자, 꼭 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왜 그렇게 쓰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책 한 장 안 읽고, 글 한 줄 쓰지 않고도 멀쩡히 잘 사는 사람만 많다. 글쓰기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때마침 남편의 사업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며 성업했고, 나 또한 2호점을 맡아서 운영하게 됐다. 장사는 잘 됐고, 가난한 작가 시절에는 몰랐던 돈 버는 재미도 느껴보았다. 이윽고 아이가 태어나자 시간은 2배속으로 흘러갔다. 글 같은 거 안 써도 잘만 살아지는구나 싶었다. 글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더라고. 나에게 책읽기, 글쓰기는 마치 '고향' 같다. 책과 글에서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어지다보면 매번 고향처럼 글이 그리웠다. 우연인지 끼워맞추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꼭 7~8년 주기로 그런 그리움이 찾아오곤 했다. 대학교 때는 책을 좀 읽고 싶다며 휴학을 했고, 정신없는 생활이 싫어 서울을 떠난 뒤에는 공공도서관에서 하염없이 책에 파묻혀 행복해 했다. 서울을 떠난지 7년이 됐다. 다시 읽어야겠다는, 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써야만 한다는 강박보다는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쓰려고 한다. 쓰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알지만 쓰는 사람일 때 내가 가장 나답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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