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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Oct 26. 2023

괜찮다는 마법의 말

  오늘은 둘째 겨울이네 반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부터 아이들의 소속 기관에서 열리는 참관 수업에 계속 참여했으니 이제는 '참관수업 짬밥' 10년 차 엄마인 저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떨리지 않는, 평범한 마음을 가지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준비한 수업은 국어 시간으로 '매직워드'에 대해 아이들과 나눠보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말하면 힘이 나는 말'을 매직 워드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제 국어 수업 시간도 한글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어요. 큰 흐름으로는 세계화의 과정이겠고 개인으로 본다면 겨울이와 겨울이의 친구들은 큰 관점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기르겠지요.


  칠판 옆 모니터에는 매직 워드가 필요한 상황이 반 아이들의 숫자만큼 준비되어 있었고, 선생님께서 무작위로 뽑은 학급 번호에 해당하는 아이가 적절한 매직 워드를 하나씩 발표했습니다.

  "발표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는 친구에게 건넬 매직 워드는?"

  "지난 주말에 열린 대회에서 떨어진 친구에게 건넬 매직 워드는?"

  "수학 문제가 어려워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건넬 매직 워드는?"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상황에 알맞은 매직 워드를 발표합니다.


괜찮아.

    

  (잊지 마세요) 참관 수업에 참여한 지 10년 차 엄마인 저는 두 사람 건네 한 번씩 나오는, 때로는 연달아 반복적으로 나오는 "괜찮아"라는 매직 워드를 듣고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겨울이도 "괜찮아"라고 말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 초조한 마음을 끌 수 있었지요. 그리고 곧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도 '괜찮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괜찮아'라는 말이 가진 묘한 끌림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도 아이들도 이렇게 지루할 정도로 괜찮다고 말하는 걸까요? 사전적 의미로 괜찮다는 ‘별로 나쁘지 않고 보통 이상이다.’ 또 ‘탈이나 문제,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언제일까요, 아니면 '괜찮다'는 말을 언제 배웠을까요? 흐릿한 기억을 한 겹, 두 겹씩 벗겨 봅니다. 사실 기억이 얇아질수록 그 모습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상상을 더해 추측을 해 본다면 제가 처음 이 말을 배운 것은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던 국민학교 1학년 때 수도 있고, 일상에서 배웠다면 더 어린 시절에 나의 엄마에게 배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괜찮다는 단어를 알았을 때 어떤 의미로 느꼈을까요? 전자라면 ‘미안해’에 대한 반사적인 대답으로 ‘괜찮아’의 의미를 알았을 것입니다. 후자라면 넘어진 나에게 “괜찮아?”라고 묻는 엄마의 말에 동생 앞에서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난 문제없어’라는 뜻으로 괜찮다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더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나도 ‘좋아!’라는 동의하는 마음을 괜찮다고 말할 때도 있고, 매력이 있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 것을 ‘괜찮네’라고 말할 때도 있고요. 때로는 안 괜찮지만 걱정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이 말을 쓰기도 합니다.

   

  3학년 아이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은 ‘괜찮다’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괜찮다는 무난하지만 질리지 않습니다. 가끔은 글을 쓰며 제가 '괜찮다'는 말을 이토록 많이 쓴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꽤 괜찮은 세상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괜찮게 살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안녕인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을 세 글자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구구절절 이야기를 길게 하다 보면 변명을 하거나 억울해 보일 것 같은 날에도 '괜찮다!'라고 못을 박기도 합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물론 상대방은 ‘이제는’ 괜찮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의 자유에 맡길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튼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유로 괜찮다고 침묵하며 넘어가는 것이지요. 침묵은 괜찮지 않은 생각이 들게도 하지만 대체로 시간이 흐르면 곧 잠잠해집니다.


  인생의 물길을 바꿔 놓을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말은 일상의 안전지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곤란한 질문을 받은 순간 ‘괜찮다’라는 대답을 하면 부풀었던 폐가 안도하며 숨을 몰아쉬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감정을 싣고 싶지 않을 때, 이럴 때 사용하는 '괜찮다'는 단어를 대체할 뒤탈이 없는 단어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을 아끼고 싶은 순간 ‘괜찮다’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도록 선을 긋는) 게 되는 안전거리를 유지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거리는 관계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 말-괜찮다-을 자주 그리고 오래 썼지만, 여전히 질리지가 않습니다. 가끔은 쓸수록 괜찮은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삶이 괜찮길 바랄까요?     

  계절을 타는지, 이유도 모르게 산란해진 마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금 이 순간 놓치고 있는 것이 없길, 놓아야 할 것을 붙잡고 있지 않기를 바라며 내 삶이 나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마음의 기복과 상관없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객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괜찮고, 충분한 기분이 든다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주었고, 앞으로의 삶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앞으로 지어가는 삶 안에는 어떤 귀한 가치들이 일상에 흩뿌려져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또 어떤 괜찮은 삶을 엮어 갈까 기대를 가지면서 말입니다.


  



  오늘 글에는 괜찮다는 말이 지루할 정도도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괜찮다'는 말에 목이 마른 분들에게는 수분 보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응원을 제 자신에게 보내며 어깨를 좀 쓰다듬어 주어야겠습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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