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인간 Jul 29. 2024

나를 보며 웃는 나를 위해

거울 앞에서 볼터치를 하지

  저에게 글을 쓰는 즐거움은 순간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 영원히 간직하는 것입니다. 기록의 쓸모를 물으신다면 무조건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난 기록을 읽다 보면 저만 아는 그날의 영상이 머릿속에 재생되는데, 그럴 때면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제가 봐도 (생각이) 귀여울 때가 있더라고요.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래요. 여느 때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공짜로 주어지는, 당연한 하루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평소와 같은 행동 속에 전날과 다른 생각이 불쑥 솟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일을 떠올리면 자꾸만 키득키득 웃게 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기록애호자'는 기록으로 남기기 전까지는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느닷없이 머릿속으로 그 영상에 재생되면 혼자 실실 웃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얼른 글을 남겨봅니다.


  그럼 7월 28일 일요일의 오전 10시 13분으로 함께 가보시죠!


  지금 제 머릿속은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걸어서 7분 거리의 성당에서 10시 30분부터 미사가 있거든요. 종교가 있는 분들은 다 그럴까요, 아니면 저만 그럴까요? 오늘따라 고민이 많아요.


갈까, 말까?  


   복잡한 머리가 '말까'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손이 유난히 부지런을 떠는 것 같아요. 이왕 가기로 했다면 늦으면 안 되잖아요. 지금은 10시 13분이니 휘리릭 휘리릭 화장을 시작합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에센스 하나, 크림만 쓱쓱 바르고.'

  '그래도 선블록은 발라야지. 어라, 파우더 팩트를 안 챙겨 왔네.'

  안 챙겨 왔네, 에서 시선을 잠시 멈추셨나요? 저는 지금 휴가를 보내기 위해 전날 오후에 제주에서 뭍으로 올라왔어요. 가족들을 만나고 충전을 한 뒤 짧은 여행을 갔다가 돌아갈 계획입니다. 7년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예쁜 초록 파우치가 볼록하도록 화장품을 담아 왔는데 도대체 뭘 넣어왔는지 막상 쓰려고 하니 두고 온 게 더 많습니다만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인 볼터치는 챙겨 왔어요. 야무지게 브러시까지도요.


  그래서 공개된 오늘의 주인공은 볼터치입니다. 주인공을 일찍 공개해 버렸으니 잠시 옆으로 좀 샐게요. 한 문단만 옆길로 좀 모여 보세요. 그동안 저는 물건을 한 번 사면 굉장히 짧게 쓴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에 엄마가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히프게('헤프게'의 사투리)' 쓰는 편이라고 여겼지요. 그런데 오늘 보니 파우치도 7년째 깨끗하고 잘 쓰고 있고요, 여름에 메면 참 예쁜 샛분홍의 가방도 5년째 잘 들고 다니고 있어요. 옷도 한 번 사면 5년 이상을 입는 것을 보면(음, 이전에 산 것은 슬프게도 사이즈가 달라요) 적어도 아픈 지구에 덜 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문득 세상을 보는 눈으로 나도 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네요. 이 글을 읽는 독자님께서도 마찬가지고요. 가끔은 눈에 하트를 달고 나를 보자고요. 옆길 모임 끝!


   이 볼터치가 아주, 대단히, 멋진 일을 해냈어요. 이것을 잊지 않고 챙겨 온 것도 우연은 아닐 테지요. 앞서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시죠? 미사 시작 시간을 17분 남겨 놓고 집에서 성당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눈썹을 그리고, 이제는 없는 입술도 살려주는 필수 아이템인 립스틱을 바른 다음 볼터치를 꺼냈습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챙겨 왔으니 하나라도 더 찍어 바르고 싶은 마음에 꺼냈지요. 이러다가 늦을까 봐 걱정이 되는 마음도 들었지만, 살면서 마음먹은 일을 이루지 못한 적은 없지요. 이번에도 어떻게든(다다다다 뛰어서) 잘 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볼터치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는데 말이죠! 거울에 비친 얼굴이 웃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활짝이요. 분명 웃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근육이 알아서 미소를 짓고 있어요. 입꼬리를 위로 올려서요.


  이것은 대단한 발견입니다. 제가 '볼터치 조건 반사'를 발견했어요. 세상에나! 게다가 나에게 이렇게 예쁜 얼굴로 웃(어 줄 수 있) 다니! 나이가 들수록 일상에 눌려 제 얼굴을 보며 웃을 일은 점점 줄고 솔직히 말하면 거울을 보는 일도 잘 없거든요. 그런데 볼터치를 꺼내 뚜껑만 열었을 뿐인데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거울 속의 '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나! 이 볼터치도 한 달 전에 사서 그때부터 하거든요. 집 근처에서 회전초밥을 먹고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길에 ‘올리브영’이 보여 클렌징폼을 사러 들어갔다 계획에도 없던 과소비-(사)춘기의 생일이니까요-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이템에 '올리브영'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숨은 기능이 있었다니, 그게 방긋방긋 미소를 짓게 만드는 ‘웃음 버튼’ 일 줄이야!


  결국 뜨거운 여름에 종종걸음으로 미사 시간에 맞춰 성당에 도착했답니다. 긴 나무 의자에 앉고 나니 잊고 있던 '볼터치 조건 반사'가 생각나 혼자서 킥킥 웃었네요. 거울 속에 보이는 제 얼굴이 얼마나 예뻤다고요! 예쁘다는 말이 좀 양심이 없나요? 에이, 다들 거울 앞으로 가보세요. 그리고는 앞자리에 앉은 아기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는 상상해 보세요. 그럼 자동으로 입꼬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며 미소 짓게 되거든요. 그 미소, 제가 볼터치를 할 때 그렇게 웃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 주세요.

  나를 보며 웃는 내 모습이 보고 싶어 오늘도 볼터치를 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핑계가 가지가지라 가지를 튀겨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