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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ug 23. 2024

새벽 6시에 혼자 바닷가를 걸었더니

뉴스에 (나만 알아볼 수 있게) 나왔다

태풍 종다리가 지나간 아침의 이호테우 @무지개인간


  이호테우의 아침은 '열정의 산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명상을 하는 사람들, 함께 온 짝꿍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땀을 뻘뻘 흘리며 쉬지 않고 해변을 왕복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처럼 오늘은 어떤 생물을 만날까 살피느라 30분 동안 가뜩이나 짧은 해변을 반도 못 걸은 사람까지. 아침 이호테우 풍경 속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을 맨발로 모래 위에 꾹꾹 찍어내지요.

  전날 제주에는 태풍 '종다리'가 다녀갔습니다. 태풍의 기세는 올라올 때는 무섭고 요란해 밤잠을 설치게도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저 쓸고 간 흔적을 허망하게 보며 말없이 제자리로 돌리는 일에 집중하게 되지요. 다행히 이번 태풍은 피해 신고 없이 무사히 지나간 것 같습니다.



  간밤에 종다리가 다녀간 날 아침, 알람을 맞춰두지도 않았는데, 5시 40분에 눈이 번뜩 떠져 이호테우 해수욕장으로 맨발 걷기를 하러 나갔습니다. 요즘은 이런 걷기를 '어싱(Earth+ing)'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오늘은 세 번째 '어싱데이'입니다. 제주에 살지만 이번 여름에 바닷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과 벌써 '입추'가 왔다는 것을 알고 주말에 한 번, 전날 해안동 사람들과 한 번 그리고 오늘은 혼자 해변을 걸으러 갔습니다. 태풍이 온다고 재난문자가 많이 온 탓인지 전날보다 걷는 사람들이 반 정도 줄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아침 바다를 먼저 만나고 있었더라고요. 정말 다들 부지런합니다. 열정도 가득하고요.


  이호테우는 올 때마다 좋은 바다입니다. 주로 가족들과 함께 일몰을 보러 가는데, 매번 최고의 일몰을 만나고 옵니다. 눈에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가득 담아 오지요. 게다가 이호테우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해마다 여름밤이면 한치잡이 배의 집어등이 별이 내린 듯 반짝반짝 빛나지요. 이호테우 해변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얼음컵 두 개와 맥주 한 캔을 사서 밤바다를 보며 나눠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다고요. 오늘은 이호테우의 화려한 밤 산책 대신 아직은 낯선 아침의 풍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다는 아침에 오니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조개로 하는 바다, 이호테우 @무지개인간

  모래해변을 걷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찰나 누군가 손을 내밀더라고요. 그래서 놀란 눈으로 보았더니 제 손에 무언가를 올려줍니다.


  "방금 조개 잡았는데 한 번 봐요."


  그대, 내게 왜 이런 친절을 베푸시나요?


  순간 조개껍데기가 돈의 가치를 지녔던 옛날 옛적으로 여행 온 기분이 들었어요. 무늬가 너무 예쁜 조개를 혼자 보기가 아까워 나눠주신 마음에 동(動)해 어쩌면 인류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고요. 예쁜 것을 나눠고 싶은 마음을 받아 예쁘게 사진을 남기고, 다시 바다로 보내주었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조개로 환대하는 바다, 정말이지 아침의 이호테우는 참 이상합니다.


  


  물과 친하지 않아 수영을 못한다는 흠이 있지만 이 친절한 사람들과는 함께라면 바닷가를 걷다 발을 헛디뎌도 괜찮을 거라는 안심이 듭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을 놓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견뎌낸 바닷속 생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마음으로 움직임을 영상에 담았지요.


이호테우의 아침에는 이런 바다생물이 있어요 @무지개인간


  작은 게는 언제나 그랬듯 옆으로 걷고 있네요.

  수영을 가장 즐기는 물고기를 뽑으라면 복어를 뽑겠어요.

  바닷장어의 새끼(같은 물고기)를 본 순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라며 입맛을 다신 것은 비밀이죠.


  그리고 이런 제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마음은 없었겠지만, 놓치지 않고 찍어주는 기계가 있더라고요. 카메라. 알아차린 순간 마음이 바빠집니다.

  '어머나, 마침 바람이 앞에서 불다니, 머리카락이 예쁘게 날리며 어쩌면 뮤직비디오 같겠는 걸.'

  '고개를 조금 숙인 각도가 부담스럽지 않으니까 45도 정도로 숙이고...'

  '오른쪽 머리카락은 귀 뒤로 살짝 넘겨야지.'

 T는 구름이 예뻐서 찍는 거라고 마음의 소리로 알리지만, F는 일단 카메라 앞이라 신나고 즐겁기만 합니다.


  3시간 뒤, 문득 떠올랐어요. 아까 분명 카메라가 찍고 있었는데 말이지,라는 생각이요. 그래서 폭풍 검색을 해봅니다. 가끔은 저는 탐정이 되어도 잘했겠다 싶어요. 키워드(유튜브 검색어: 이호테우 태풍)를 잘 넣었는지 단번에 찾았습니다.

  연합뉴스에 나왔더라고요. 아래 뉴스 영상에서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사람이 접니다. 아쉬운 것은 이날은 가슴 위쪽, 즉 얼굴이 자신 있었는데 신경 쓰지 못한 다리만 꽤 오랫동안 찍으셨더라고요. 아, 물어보기만 했어도 "찍으셔도 됩니다."라며 '쿨내 나는' 승낙을 했을 텐데. 또 아쉬운 것이 있어요. (TMI: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여름 동안 찐 살을 빼지 못했는데 주머니 속 핸드폰 때문에 더 통통해 보일까 봐 굳이 핸드폰을 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 바람에 뭔가 더 이상한 영상이 된 것 같네요.  


태풍 지나고 더위 꺾이나 했더니… 제주 열대야 여전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youtube.com)


  역시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하는 게 최고입니다.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운 모습이었어요. 다소 아쉬움 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영상으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고 관심도를 알아보는 '무지개인간 찾기' 대회도 열어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즐거운 소식을 전하자면 이번 주 금요일(8월 23일) KBS 편스토랑에 제가 찍은 사진이 나올 예정입니다. 인스타그램 피드 사진과 브런치스토리 사진 중 어떤 사진이 선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갈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는, 1년 전에 찍은 이 사진이 개미 뒷다리만큼 나오는지, 개미 눈물만큼 나오는지 금요일 저녁에는 약속도 잡지 않고 TV를 볼 예정입니다. 독자님께서도 보시면 놀란 눈으로 즐거워해주세요. 개미 눈물만큼 나올 것 같지만요.




  다정한 독자님, 오늘도 재미있게(아마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 문장에 나오는 '열정의 산보'는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열정의 산보>라는 브런치 카페 이름을 빌려 썼습니다. 카페 이름이 참 예쁘죠? 직접 방문하신다면 동네도 예쁘고, 브런치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사장님도 좋고, 음악도 좋은 곳이고 느끼실 거예요.

  기회가 되신다면 꼭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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