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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망고 Feb 25. 2024

#2 퇴사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회사를 다녔더니

그로 인한 역설적인 변화  

아아니?! 퇴사를 염두에 두고 회사를 다닌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요즘 애들이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약간 변명을 좀 해보자면, 입사 이후로 한동안 나는 정말 정말 많은 퇴사자들을 목격했다.

오죽하면 한동안 내가 월요일마다 출근길에 "아, 이번 주는 누구의 퇴사 소식일까~?" 궁금해하며 지옥철에 몸을 실었을까! 이러다보니.. 퇴사가 마치 하나의 사내 문화처럼 느껴졌고, 퇴사자들이 워낙 많으니 회사에 정말 큰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렇다, 내 MBTI는 S가 아니라 N이다) "내가 만약에 퇴사한다면~"을 자연스레 가정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헤헤.. 상상에 과몰입을 했던 탓일까.. 나의 회사 생활에 영향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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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번째로는, 회사에서 완전한 미니멀라이프를 실현하게 되었다. 정말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목민처럼 말이다!


퇴사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들이 퇴사 전전날, 전날, 그리고 당일까지도 바리바리 두 어깨, 양손에 짐을 들어 나르고도 모잘라서 한 짐을 자리에 두고 가는 걸 여러번 목격했다. (퇴사자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은 자연스레 "선착순 무료 나눔"으로 이어져, 주변 사람들이 수혜를 보기는 했다.) 무려 3번의 지하철 환승과 1번의 버스를 타야 출퇴근이 가능한 나에게는 그렇게 많은 짐을 들고 지옥철을 타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버겁다.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덕에, 나는 회사에서는 정말 필요한 것 딱 몇 가지만 두고 생활하고 있다. 내가 회사에 챙겨가 두고 쓰는 것이라고는 대부분 먹어 없앨 수 있는 것들 뿐이다. 그 외에 핸드폰이라던가.. 지갑이라던가.. 그런 건 뭐 회사가 아니어도 늘 들고 다니는 것이고. 그나마 가장 업무에 무관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것은 머그컵, 립밤, 핸드크림, 두 권의 책, 슬리퍼, 그리고 작은 우산 정도다. (나머지는 회사 비품이라 어짜피 두고 나와야 될 물건들이다.)  


이런 미니멀라이프를 실현하는 것이 특.히.나. 우리 회사에서는 아주 좋은 장점이다. 초등학교 때도 이렇게까지 자주 자리를 바꾼 거 같지는 않은데.. 우리 회사는 정말 2달에 1번은 꼭! 전체적으로 자리를 바꾼다. (7개월 다니는 동안.. 자리를 이미 4번 정도 바꿨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그 거짓말 같은 걸 우리는 해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기에는.. 머지않아 또 바꿀 것 같으니 "해낸다"로 정정하겠다.) 이러한 빈번한 '민족 대이동-오피스 편'을 찍을 때마다 짐이 적은 것에 매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아, 여기도 정정해야 겠다 -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안도가 섞인 한숨"으로 말이다.) (웃음).


자주 있는 자리 바꿈에 용이한 것보다 회사 내 미니멀라이프가 주는 더 큰 장점은, 업무에 집중하기가 더 좋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읽거나 들었다.. "내 주변에 물건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 모두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순 있겠으나, 적어도 나한테는 이 말이 잘 맞는 것 같다. 내 책상엔 뭐가 별로 없어서 정말 덩그러니 올려진 모니터 두 대에 집중하기가 좋다. (우리는 오픈형 데스크가 아닌 칸막이로 나뉘어 있어서, 정말 데스크 두 대만 시야에 들어오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먼지가 쌓이는 것 같으면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하나하나씩 들고 내리며 닦을 필요 없이, 그냥 물티슈로 스윽-슥 닦으면 편히 깨끗해져서 좋다.


두 번째로는, 언제든 인수인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 유지는 그 어떤 누가 물어봐도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 때 그 때 잘 업데이트 하며 기록해 두어야 가능하단 뜻이다.


그래서 정말 웃기게도 "아, 퇴사 때 편하게 인수인계 하려면 내 업무에 대한 설명서는 미리미리 시간 있을 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토대로 만들기 시작한 문서가, 지금 우리 부서의 업무 메뉴얼 초안이 되었다. (내가 퇴사 상상을 하기 이전에는 우리 부서에 "업무 메뉴얼"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제 우리 부서에서는 누군가가 부재중일 시, 신속히 처리 되어야 되는 나름 간단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서로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라떼는~" 우리 부서 내 특별한 업무 교육 없이 그저 "알아서 이메일 참고해 가면서," "모르는 건 (눈치껏) 물어봐 가면서" 일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기존의 부서원 누구든지 새롭게 온 부서원들에게 기본적인 업무에 대한 대략적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타 부서 사람들이 우리 부서의 어떤 특정 업무에 대해 물어볼 때, 메뉴얼을 보여주며 빠르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주변에서 우리 부서가 제일 체계적이라는 말도 듣게 되었고, 효율성이 올라간 것에 대해 부서원 모두가 동의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퇴사를 상상하니 (그래, 그 때만 해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해 그저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직장 동료들에게 전혀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었다. 어짜피 퇴사하면 안 볼 사람들, 그냥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고, 업무적인 지장만 안 주면 그만 아닌가. 그냥 일적인 관계인데!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내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변화가 왔다고 해서 그들을 친한 친구로 생각한다거나, 뭔가를 바란다거나 하는 건 여전히 없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다 괜찮은 사람들처럼 느껴지고, 그저 딱딱하고 정직하게 "직장 동료"로만 생각하진 않게 되었다.  


내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날 응원이 적힌 포스트잇 쪽지와 함께 몰래 내 책상에 간식이나 음료를 두고 가는 사람들, 집에서 한 번 건강한 간식을 만들어 봤다며 직접 볶은 달달한 호두 강정을 예쁘게 포장해서 주는 사람도, 내가 참 좋아할 것 같다며 본인이 집에서 아껴 마시는 루스리프 찻입을 작은 약 봉지에 소분해서 가져와 내 손에 쥐어주는 사람,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사소한 행동에 정말 고마워하며 그 마음을 어떻게든 배로 표현해주는 사람들 … 현재 내가 다니는 직장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Feel good, do good"이라던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니, 나도 주위를 더 챙기게 되고, 또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또 챙겨주고, 나는 그런 그들을 또 더 챙겨주고 ... 이걸 무한반복하며 지내다보니 내가 있는 이 회사가 참 따스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모두가 이렇게 천사 같은 건 아니지만, 몇 명은 특히나 내게 비타민 같은 존재라서,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자리에서 스을쩍 엉거주춤 일어나서 목을 쭈욱 빼서, 재빠르게 비타민 같은 존재들을 스캔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 때 꼭 한 두 명씩이랑은 눈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얼굴 옆으로 든 양손을 소심히 흔들며 인사해주거나, 미어캣 마냥 누굴 그렇게 찾냐고 메신저로 연락을 보내준다 (웃음). 개인적인 감정 같은 건 절대 가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이 사람들이 없는 회사 생활은 잘 상상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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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퇴사를 상상하며 회사를 다녔더니, 점점 퇴사를 하고 싶지 않게끔 내 자신이, 또 내 주변이 변화했다.


근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회사에 이제야 좀 많이 적응한 거 같은데, 퇴사를 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 밤 중 자다 깨, 얼만큼 더 자도 되나 확인하려고 집어든 핸드폰의 잠금 화면 하단에 뜬 이메일 알림 한 통. 몇 글자 되지 안 되는 메일 제목을 다 읽었을 때, 잠은 이미 다 달아나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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