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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망고 Apr 28. 2024

#4 첫 번째 팀장님

 

첫 번째 팀장님은 지극한 평화주의자셨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부서 사람들, 고객 분들과 절.대. 싸우려 드는 사람이 아니셨다.

내가 타 팀 팀장한테 흔히 말하는 "억까"를 당한 순간에도, 그리고 그게 "억까"임을 팀장님도 인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은 나를 억까한 그 팀 팀장과 싸울 수 없다고 하셨다. 서운했냐고? 놀랍게도 아니었다.


서로 싸워봤자, 앞으로 계속 일하면서 불편할지도 모르고, 얼굴 붉히면서 일해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 그냥 평화롭게 넘어가자는 그의 생각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억까당하는 순간에, 혹여 아득바득 싸움을 걸었다간 내가 아닌 우리 팀 전체에 피해가 올까 봐 가만히 있었다. 


*번외로, 그때 당시 우리 팀 팀장님이 나를 억까한 그 팀장 어차피 곧 퇴사할 거니까 조금만 참으라며, 밤라떼를 사주셔서 기분이 곧바로 좋아졌었다..ㅋㅋ. 그리고 팀장님한테 서운할 수 없었던 다른 (중대한) 이유는, 이때 당시 나를 억까한 그 팀장한테 모든 화가 쏠려 있었어서,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여분의 화가 없었다^^. 


어쨌건!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을 먼저 앞세우지 않는 것, 이것은 그분이 가진 장점이었다. 나는 그분이 화가 난 상태는 본 적 있으나,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분은, 결코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려면, 이건 진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 더더욱이 말이다..^^.)


그분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solution mindset이었다. 이건 위에 적은 것과도 연결이 되는데, 그분은 문제가 발생하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고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해결책부터 찾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면, 그냥 그걸로 된 사람이었다. 


팀장님이 내게 언젠가 "꿀팁"도 주신 적이 있었다. 만약 고객한테 거절을 해야 될 일이 생기면, 단순히 "그건 어렵겠네요.."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수락할만한 대안책을 제시하며 거절할 줄 알아야 된다고 하셨다. 이건 진짜 별 세 개에 밑줄 두 줄 쫘-악 그을 만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디까지 들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여러 고객 분들한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가진 장점은 상대방의 스타일 존중이었다. 팀원들을 본인 입맛대로 고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만한 크리티컬 한 무언가가 아닌 이상, 상대의 스타일을 존중해 주셨다. 그래서 주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것저것 사소한 걸로 트집 잡지 않으셨고, 덕분에 "나"라는 사람의 업무적 정체성(?)을 성립해갈 시간을 주셨다.




이러한 장점들을 가지고 계셨던 내 첫 번째 팀장님은 회사에 6개월 정도 계셨다가, 바로 떠나셨다.


떠나실 때 아쉽지는 않았다. 

장점만큼이나 강렬했던 단점도 가지고 떠나시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시점에서는, 그 정도 단점은 단점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적으로 책임부터 전가하고 보는 타 팀 팀장, 기분이 태도가 되는 과장,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거의 팀 내 왕따(?)로 몰아가는 팀장, 쌍욕을 하며 복도를 지나가는 대리와 과장... 등 여러 사람들을 간접적, 혹은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가지고 있던 직장인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 환상을 내려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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