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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Ryoo 류구현 Mar 12. 2024

진정한 삶

#인문 #메타인문학 #휴먼사이언스


진정한 삶     


삶의 다른 실체인 죽음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것을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죽음이 있음으로써 삶을 감각하고 누리는 것이다. 즉 죽음은 삶의 엔진이다. 이것은 논리적 관념이 아니라 진정한 실체다.

우리는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탯줄이 끊겼던 태생의 첫 순간, '죽음의 절대적 두려움'과 함께 '삶의 절대적 열망'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본래 하나이다. 자연의 순환 원리는 이것이 하나의 시스템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명백한 진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삶을 느끼듯 죽음을 본능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다. 다만 애써 회피하거나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물리적 위험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우리 몸의 메커니즘이 증명한다.     

 이처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실체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진실과 진리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해이지만 우리는 이를 거부해 온 것이다. 그 결과가 진실과 진리로부터 자기 소외일 것이다. 우리의 익숙한 '자기기만증'의 기원은 사실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유 모를 비능률적인 충동과 생각의 근원은 이것임을 알 수가 있다. 진실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명백한 앎을 요구한다. 진리는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자연 원리적 삶을 권장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의 원리

우리가 '죽음'을 진지하게 직시할 수가 있고, 어느 순간 어떤 종류의 죽음을 떠올리거나 마주해도 담담하게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죽음에는 물리적 죽음만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도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단독자'로 홀로서기를 요청한다. 우리의 번뇌는 이처럼 명백히 죽음에서 기원함을 알 수가 있다.

 이 진리와 마주하고 함께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가 없는 고통이 아니라 기꺼이 만나서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이자 합리 정신이다. 여기에 누구나 가지는 공감의 기초가 있는 것이다.     

 진리와 합리를 떠난 마음이 가지는 것이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러한 엄연한 진리를 외면한 '자기기만'을 두려워한다. 자기기만은 ‘죽음’과 동의어이다.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은 여기에 있으며, 생명인 우리의 본능은 이 어긋남과 불안정성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죽음을 직접 다룬 것은 주로 '종교'였다. 명백한 진실이자 절실한 앎인 '죽음'에 대한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세계 인식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죽음을 다룬 것이 '생로병사'가 자연 원리임을 밝힌 불교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철학에서는 하이데거가 죽음의 직면과 삶의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이를 온전히 과학으로 다룬 것은 아직도 없어 보인다. 이처럼 우리는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죽음을 매우 드물게 말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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