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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Apr 24. 2024

마케터를 마케팅 하는 시대

마케터 특 : 자기를 잘 판다

1.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어 재끼는 마케터들


인스타그램이 드디어 나를 '고양이 집사'에서 '마케터'로 인지했나 보다. 몇몇 브랜딩 커뮤니티 계정과 잘나가는 마케터들을 팔로우하니 피드에 줄줄이 뜨는 게 죄다 마케팅 관련 광고인데, 내용은 말 그대로 ‘마케터의 경험과 기술을 파는 광고’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고 세상은 그런 똑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만, 오늘날 마케터들은 방송국이 나를 섭외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마케터답게, 최적의 타겟을 찾아 최적의 매체에 최적의 노출 빈도와 카피로 늘 프로필 방문을 유도한단 말이지. 



세상에 잘난 마케터가 많다는 걸, 마케터인 나에게 보여지는 광고 소재를 통해서도 매일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 마케터로 10년 정도 일하면 자기 이름을 달고 회사를 차리든 강연을 하든 책을 쓰든, 아무튼 뭐라도 해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 마케터를 파는 마케팅의 수혜와 피해에 대해


마케터를 팔게 된 건 마케팅 수요가 많아서일까? 어느 회사든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마케팅 롤은 필수이기 때문이겠지. 제품력은 고만고만하고, 이제는 마케팅으로 승부 보는 시대니까. (테무의 마케팅 비용이 2023년에 약 2조2861억원. ‘착한 가격’이라는 단 네 글자만을 가지고 네이버 롤링보드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걸 보고 난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발 담고 있는 이쪽에서 분석해 보자면, ‘수요만큼 공급도 많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안정된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가 아니고서야 (아마 그런 회사라도 마케팅은 직무순환에 해당할 것 같지만), 마케팅은 진입 장벽이 낮고 업의 수명도 짧기 때문에 한 산업군이든 한 직무에서든 10년차 마케터인 것이 엄청난 USP가 되는 느낌. 


내가 주니어일 때도 이런 현상은 있었다. 당시 핫했던 책이 <책은 도끼다>부터 <광고천재 이제석> 등이었는데(당시엔 광고인들의 위용이 있었지), 이제는 그것이 SNS 셀프 브랜딩과 맞물려 꼭 책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도 자기의 이름과 커리어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멋진 마케터들의 SNS를 염탐하면서 배우고, 동경하고, 성장한다. 특히 나같이 사수 없고 돈 없는 중소기업 마케터는 인터넷 세상의 수많은 선생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찾는 것과 별개로, 나를 마케터로 분석한 머신러닝의 똑똑한 퍼포먼스는 내게 좀 씁쓸함을 준달까. 내가 ‘나 쭈그리 될 거 각오하고 너님한테 정보 얻는다’와는 좀 다르게, 피드 곳곳에 쏟아지는 마케터 소재의 광고들은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무작위로 뚜드려 맞는 느낌. 

구매 담당자나 물류 담당자로 10년 일해도 그걸로 자기를 오픈된 공간에 세일즈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사람인이나 링크드인에서 자기를 어필하는 것과 다르게 SNS 광고에 마저 자기를 뽐내는 마케터들이 너무 많은 걸 보면 왜인지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SNS 많이 하면 비교심리로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걸 알면서도  업무적으로 안 할 수도 없다. 내가 필요해서 찾아 보는 정보는 ‘흑흑, 부럽다. 나도 저런 인사이트 갖고 싶다’라는 부러움 섞인 비교라면, 후두둑 쏟아지는 광고들은 ‘너는 왜 이런 사람 못 됐냐ㅋ’라고 비웃음 섞인 비교 같다.



런 행태를 예민하고 아니꼽게 보는 이유는 솔직히 죄다 부러워서다. 배가 아파서다. 

100억 매출 기획자, F&B 전문가, 몇 년 차 어디 출신 누구... 내가 갖지 못한 타이틀과 전문성을 가진 게 부럽다. 나는 아직도 찰랑찰랑 물경력을 채우고 있을 뿐인데. 


어떤 날은 그래서 더 안달이 난다. 빨리 이 회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돼,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돼,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야 해, 리더로서 잘 해내야해, 마케팅의 저력을 보여줘야 해…! 내가 전의 글들에서 적었던 ‘마케터의 멘탈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열망과 욕심에 며칠을 앓다 보면, 애초에 망한 거 그냥 gg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야 잡기로 버텨가는 중소기업 마케터. 나에게는 성실히 밥벌이를 해야 할 의무가 있고, 내가 아무리 발을 동동거려 봤자 업계에서 회자되는 광고나 캠페인, 아마 난 안 될거야. 그건 마치 내가 모두가 다 아는 회사에 다니기엔 이미 늦은 것처럼.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하되, 대신 조금 더 정성껏 하자꾸나. 





모두 자신을 시장에 내놓고 열심히 팔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방법이 노골적인 표현(23살 자산 3억)이냐, 자기계발에 위탁한 점잖은 표현이냐(일잘러가 되는 법)의 차이일 뿐. 이런 시대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묘연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가진 전문성과 명예는 한줌도 안 되므로 나는 이만 기권하고 관전하기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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