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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 Apr 02. 2021

오늘의 운세

: 원의 시작은 어디인가

"운세 총운은 얼씨구야 입니다."



얼씨구야, 보기만 해도 신나는 기분이긴 한데 오늘은 딱히 약속도 없고 재미난 일도 없는 날이다. (금요일이니까 얼씨구야라고 할까 그냥.) 심심할 때 재미 삼아 보는 거지만, 중요한 날 봤다가 '일보후퇴' 같은 문구 있으면 휴대폰 던지고 싶은 기분인 거 다 안다. 기가 막히게 틀렸던 운세가 갑자기 떠오른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날이었는데, 이미 그 시험에서 두 번 정도 낙방했던 상태라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일 년 내내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험이 아직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화나고 억울한 일인지 아실 거라 믿는다. 믿는 종교도 없는 나는 기도할 곳이 마땅치 않아 네이버를 신 삼아 보기로 하고, 당당하게 오늘의 운세에 내 생일을 썼다. '일취월장'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래 준비해왔던 일이 해결되는 날이고...', 시험운도 볼까.

'몰랐던 문제의 답도 갑자기 생각나는 날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오기가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나도 빛을 보는구나 싶었고, 기운에 힘입어 시험도 나쁘지 않게 봤다고 생각하고 나왔다. 헷갈렸던 문제를 복기하면서 답을 찾아보는데, 웬걸 맞힌 게 하나도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답을 쏙쏙 피해 가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신(=네이버)의 가호가 함께하길 빌며 밥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커트라인 발끝에도 못 간 점수를 받았지만 예의상 아슬아슬했다고 하자. 이후 운세고 나발이고 운명도 못 믿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 본인은 어느 정도 운명론을 믿는다. 예전 잠시 닿았던 사람과의 인연이 기똥차게 이어질 때, 생각 없이 행했던 일이 인생의 반환점이 될 때.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나기도 하는 이 사건을 마주할 때면 운명이란 커다란 벽을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주위에 양자역학 얘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인간의 태생부터 궁금증을 가지는 그런 피곤한데 재밌는 친구.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릴 줄 아는 나는 그런 친구가 있다. "운명은 절대적이고, 분명 있는 것이고.." 그런 얘길 하는데 대화가 꽤 웃기다.


"운명을 뒤집으면? 내 의지로 뒤집을 수도 있잖아."

"그것마저 운명이라니까."

"그걸 또 뒤집으면."

"그것도 운명."


듣다 보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말들이다. 뒤집는 것, 뒤집히는 것조차 운명이라고. 그런데도 우리는 왜 포기하지 않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본인은 그냥 운명을 맞이하는 게 재밌어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 이상의 생각을 하기 싫은 이유도 있다. 이 생각을 1시간 이상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 양자역학 친구를 흔쾌히 빌려줄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재밌게 놀아주세요. 무튼 멀찍이 놓고서 보면 이런저런 성격을 가진 내가 다양한 일들을 겪는 게 재밌다. 좀 불행하고 덜 행복하고 이것이 정녕 내 운명이나며 쌍욕을 내뱉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사이사이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행복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게임에 이입해보면 더 재밌다. 왜 2010도쯤이었나? 유행했던 스토리 게임 같은 거 말이다. 능력치도 가지고 있고, 갈등도 겪지만 그 장면조차 재밌는 것처럼.



운명에 좌절한 사람도, 별생각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다 잘 될 거다. 본인도 여러 번 낙방했던 시험 다음번엔 당당하게 붙어서 왔다. 커트에 (간)당(간)당하게 걸려서 찌질하게 붙긴 했지만, 붙었으니 내 알 바 아니다. 운명에 굴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운명 위에 올라타서 최대한 즐겨보라는 말이다. 진지했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조금만 아주 조금만 거슬러서 이번 여름엔 지난 봄보다 덜 슬퍼하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운명이 당신 앞에 우뚝 서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예의 차려서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남 인생 말고 내 인생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살도록 노력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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