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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투덜 Apr 24. 2021

인생 2막언박싱

남편은 오늘도도전 중

아이보리 점퍼와 아이보리 바지를 입고

"오늘 완전 깔맞춤이쥐~"

현관문 거울 앞에서 기분좋~은 얼굴로 자랑을 한다.

50대 초반의 남편은 같은 또래의 남자들에 비해서는 뭐 패션 센스가 쪼금 있는 편이다.

결혼 전에 내가 사준 진한 남색의 가방을 메고,

발이 편하다며 주구장창 신어대는 파란색의 운동화를 신으려 한다.

"자기야! 신발은 다른 걸로 하는 게 어떻나?" 고 권유해 본다.

오후 강의를 듣고 그는 바로 오산이라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취업 필기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출발하게 되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며 체력소모가 많아 시험을 못 칠 것 같다나 뭐라나~


충분이 공감이 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격동적인 중년의 몸을 가진 우리는 소모적인 모든 상황을 체크해서

생활에 반영하지 않으면 금방 방전이 되어 버린다.

남편은 언젠가부터 그런 자신의 몸과 상의하고 협의하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는 듯하다.

나보다 확실히 현명한 사람이다. 

인정!

"잘하고 온나.  젊은 아~들한테 공부라는 거는 이런 거다 하고 한방 먹이고 온나."

한국사와 상식 시험을 위해 며칠을 집중하며 공부하는 남편을 보며 

마치 아들인 것처럼 대견함을  느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  나의 나이를 모를 것이여~"라는 남편에게

면접 때는 어쩔 건데  하고 한소리 하고 싶지만,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실망한 내색 없이 도전하는 남편이 

고맙고 짠한 따름이다.


우리 부부는 현재 실업상태이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 부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화 관련 업종에서 종사했던 둘은 한꺼번에 실업이라는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 퇴사는 코로나 사태 전에 했었지만,

남편은 그 바닥에 뼈가 굵어진 사람인 터라 금방 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문제는 코로나 이후 문화 쪽에서 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퇴사 후

부산, 울주, 창원, 울산 등 부산경남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기관 채용공고에 응시하였다. 

번번이 청년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했다. 

심지어 아는 지인과 같이 응시하여 아는 지인이 합격을 하였다.

한마디로 박터지는 취업전쟁인 것이다.


그래도 다시 남편은 오늘도 도전 중이다.


SRT를 타기 전 부산역인 듯 전화를 걸어왔다.

"수달이 뭐해~" 그는 주로 나를 수달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왜 카톡을 안 봐? 나 없으니까 라면 먹으려고 했지"

요즘 한약을 먹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을 못 먹는 나를 놀리는 말이다.

사실 뜨끔했다. 

갱년기 증세가 심한 아내를 언제나 걱정하는 남편이다.

살짝 눈물이 났다.

참 좋은 사람인데 재주도 많고 실력도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기회가 올 때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영화제 일을 할 기회가 와서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했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그 해 모든 축제 사업이 정지.

결국 기회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번에는 계약 만기로 퇴사하였지만, 그동안 실적이 있으니

다른 일로도 연결이 잘 될 것이라 기대했건만

펜데믹 시대로 문화계는 또다시 경직되어버렸다.

간간히 나오는 일자리마저 5포 세대인 청년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아직 한참  꿈을 펼치기 좋은 나이인데..........

남편에게  이제 정말 레알 좋은 기회가 찾아왔으면 한다.

기차 안에서 출제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살며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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