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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투덜 Jul 24. 2022

똑똑똑 예술가 (4)

선비 어르신

어르신의  첫인상은 우리 아버지와 닮으시구나~였다. 

우리 아버지는 목수셨다.  공장을 꽉 메운 도구들은 언제나 반짝반짝하였고 쓰기 좋게 제자리에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하루의 일이 끝나면 공장은 온통 하얀 나무가루가 날아다니고 아버지는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사용한 도구는 반드시 닦아두고 공장 바닥은 개미가 미끄러질 정도로 청소를 하셨다. 시원하게 몸을 씻고 나오셔서는 맛있게 저녁을 드시며 신문을 찾아보시곤 하셨던 아버지를 나는 참 좋아했다. 지금도 우리 아버지는 변함이 없으시다.

선비 어르신은 그런 깔끔쟁이 아버지와 겹쳐 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선반 위의 약들은 먹어야 할 순서대로 날짜별로 구분되어 있었고 옷들은 계절별로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이불은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었고 가구도 정돈되어 있었다. 말끔한 선비님이 연상되는 분이었다. 말씀도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하대하지 않고 존중해 주셨다.


선비 어르신은 영도 토박이이시다. 영도에서 태어나 줄곧 영도에서 살아오셨다고 한다. 4남 2녀의 6남매 중 셋째인 어르신의 어린 시절은 어떠셨는지~ 그때 그 시절에 좋아했던 일이라든지~ 좋아하신 분은 없었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 대니 "그냥 사는 것이 중요했어요. 기댈 곳 없이 혼자 힘으로 세상이 흐르는 대로 흘러버려서 잘 모르겠어요." 하며 어색해하시면서도 그래도 묻는 말에는 잔잔한 어투로 대답을 해 주신다.

학교를 졸업하고 20살 청년의 어르신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친구 따라 군입대를 하게 된다. 강원도 철원에서 3년 3개월 근무하며 수송, 경비 등을 맡아 운전을 배우셨다고 한다. 후일 이 경험을 살리게 된다.

제대 후에도 여전히 살 일이 막막했다고 한다. 자갈치에서 식당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의 권유로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떼어와 뱃사람들을 대상으로 담배장사를 시작하였다. 전매청의 담배가 아니라 국제시장 노상에서 담뱃잎을 구매해서 기계로 돌돌 말아서 제조했다고 하는데 1보루에 100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얼마나 되는 걸까? 그 시절에는 그런 담배들이 흔하게 있었다 한다. 담배 한 보루를 고기나 생선으로 물물 교환하기도 했다. 선비 어르신의 그 시절은 거창한 장래희망 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군대에서 익힌 운전이 그 후 밥벌이가 되어 일을 그만두시기 전까지 택시와 버스 운전기사로 살아오셨다. 

영도를 왕복했던 85번 버스가 선비 어르신의 마지막 일자리였다. 안내양이 있었던 버스는 청학동에서 남항동을 거쳐 대평동을 왕복하는 버스였다고 한다. 버스 운전사로 아들은 키우고 공부시키셨다. 하나뿐인 아들은 강원도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라 가까이 있지 않으신다. 장교라면서 은근 아들과 공무원이라는 며느리를 자랑하신다. 너무 멀어 혼자서는 가보시지 못하니 바쁜 아들이 그리울 만도 한데 내색하지 않으신다. 혹시나 그런 자신의 말조차 아들에게 페가 된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매달 자갈치시장에서 아들네에게 건어물을 바리바리 사서 보내시는 선비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의 사랑을 새삼 느낀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아들네에 한번 가보고 싶으시다는 선비 어르신.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그리운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를 만나러 가실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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