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성장중입니다.
한동안 나는 이 말을 반복하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온갖 콘텐츠만 소비하는 생활을 보냈다.
책이라곤 다 한 글자도 읽지 않았고,
그나마 주 2회 운동은 겨우 다녔지만
그 외엔 생산적으로 보이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너무 더워서 그런가?
아이 방학이 있어서 나름 힘들었나?"
내가 아끼는 내 공간도 너저분 그 자체였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더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창문을 열고 몸을 일으켜 종량제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언젠가는이라는 마음으로
몇 년째 비우지 못한 물건들도 기어이 다 비웠냈다.
특히 목이 늘어나고 색이 바래 외출복으로는 입지 못하지만
집에서라도 입겠다며 모아둔 옷들도 비워낸다.
비워지는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 나의 고집스러움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은 하기 싫었으면서 체면치례로
그래도 이 정도는 있어야...라는 마음으로
기어이 한 번도 하지 않을 거란걸 알면서, 이렇게 이고 지고 있었구나.
그렇게 느릿느릿 시작한 정리가 어느덧 속도가 붙고
웨건 가득 두 수레를 버리고 나서야 한숨을 돌려본다.
차가운 물에 샤워를 마치고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었다.
내 마음처럼 꽉 막혀있던 공간이 조금 숨을 쉰다.
제법 단정해진 공간을 보니, 그간 꿍해있던 마음이 좀 풀리는 듯하다.
한동안은 나라는 사람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다.
쓸모
1. 명사 쓸 만한 가치.
2. 명사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
쓰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여기서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한 가치는 돈이다.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라는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돈을 벌어볼 궁리를 해본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싫고 재고 따지니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잔뜩 쪼그라져 버린 자존감으로 푸념을 늘어놓으니 남편은
"누가 돈 벌어 오랬어? 하고 싶은 거 해." 한다.
참 든든하고 고마운 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서운하기도 하다.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돈도 벌리면 더 좋고.
그러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으로 한동안 살게 되었다.
물건으로 들어찬 어지러운 내 공간을 정리하며
젖은 솜처럼 늘어졌던 마음을 다독인다.
그리고 생겨난 공간의 여유만큼 나도 좀 더 움직여 볼 마음을 먹어본다.
때마침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마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정리는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해야한다." -곤도 마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