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호랭이 Oct 23. 2024

엄마는 오늘 안도한 하루였어.

아이의 말을 수집하고 기록합니다

지난여름 아이와 함께 인사이드아웃 2를 보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 표현된 캐릭터들이 6살 아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아이는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보고 또 보더니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엄마, 오늘은 어떤 감정들이 나온 날이었어요? 기쁨이? 버럭이? 소심이? 슬픔이? 아니면 불안이?"


엄마의 하루가 궁금한 아이의 질문이 귀엽게 느껴진다.


"엄마는 이래서 기쁨 이도 나왔고, 소심이도 나왔던 것 같아."

"봄이는 어떤 감정이 느껴졌어?"

"저도 오늘 기쁨 이도 나왔고, 슬픔 이도 조금 나왔어요. 또 느낀 거 없어요?"

"또? 글쎄 잘 생각이 안 나네..."


아이의 질문에 한두 마디 대답을 하다 보면, 이내 말문이 막힌다.


'오늘 느낀 내 감정이 뭐였더라?'


평소에 나의 감정에 참 무심한 편이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의 아주 강도 높은 감정의 변화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느낀 지도 모른 채 그냥 흘러간다.

그게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늘 느낀 나의 감정


1. 아침에 필라테스를 갔는데 예약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얼떨결에 1:1 코칭을 받게 되었다.

→ 행운을 얻은 것 같은 기쁨, 감사함, 반가움 /  운동을 하러 간 나 자신에 대한 기특함, 상쾌함

→ 원하는 동작을 해내지 못했을 때 느낀 좌절감, 속상함, 답답함, 민망함


2.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김밥을 포장해서 드디어 먹었다.

→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흡족함, 만족스러움

→ 운동직후에 먹은 탄수화물 폭탄에 대한 겸연쩍음, 신경 쓰이는 마음


3.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과의 식사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 내 의견이 전달되지 않은 답답함, 맥 빠짐, 걱정, 긴장됨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추진력에 대한 감탄


4. 봄이의 병원 검진 결과를 확인했다.

→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도, 긴장이 풀리는 마음


5. 집에 큰 자리만 차지하고 사용하지 않는 아이의 물건을 드디어 비웠다.

→ 흔쾌히 허락해 준 아이에 대한 고마움, 후련함

→ 중고거래로 얻은 수익으로 느낀 흡족한 마음


6.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아서 속상하다며 눈물을 보인 아이를 보았다.

→ 지난주까지 엄마랑 결혼한다더니 돌아선 아이의 마음에 대한 섭섭함, 배신감 (?)

→ 희로애락이 충만한 어린이들의 세계에 관찰에 대한 즐거움, 흥미로움


이렇게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적고, 그 순간 내 감정을 글로 되짚어 보았다.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오고 갔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감정들을 글로 적고 눈으로 보니, 그냥 좋았어, 싫었어, 짜증 났어, 별로였어 이 정도로만 뭉뚱그린 나의 시간이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는 아이의 질문에 좀 더 길게 대답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오늘 느낀 여러분의 감정은 어떤 하루였나요?"


작가의 이전글 달리기가 잘하고 싶을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