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일 도시락에 문어소시지 꼭 해주세요!"
"문어 소시지 먹고 싶어? 그래 알았어. 약속 ~"
얼마 전 아이의 가을 소풍 전날 밤
아이는 소풍도시락에 비엔나소시지로 만든 문어소시지를 꼭 해달라고 주문했다.
평소 가공식품은 되도록 먹지 않는 편이지만, 특별한 날인만큼 큰맘 먹고 해 주겠다고 약속했더랬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내게
"근데 소시지 주문은 했어?" 하고 묻는다.
"당연하지. 새벽배송으로 주문했어. 낼 아침에 눈뜨면 딱 와있지~ 밥만 해서 도시락 싸기만 하면 돼."
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이렇게
"근데 안 오거나 늦으면 어쩌게, 그냥 지금이라도 마트 다녀오는 게 낫지 않아?"
"에이 새벽에 오는데 뭐 지금 옷 다 갈아입어서 귀찮아."
손가락으로 클릭 몇 번 하면 문 앞까지 딱 가져다주는 새벽배송을 두고 이 야심한 밤에 마트라니 안될 일이지
하며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도시락을 싸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시간 확인을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배송완료 문자겠거니 하고 문자를 확인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안녕하세요 ㅇㅇㅇㅇ입니다. 확인결과 고객님의 주문 건이 다른 권역으로 이송된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배송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어쩌고저쩌고..."
네???
지금 배송이 안 됐다고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 지금 소풍도시락 싸야 되는데요??
믿을 수 없어 다시 읽어 보아도, 내가 주문한 식재료가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오늘 올 수 없다고 한다.
하필 오늘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후다닥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흔한 계란 한 알 조차 없다.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할지 잠시고민하다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여보 일어나 봐 큰일 났어. 새벽배송이 안 왔데 어쩌지?"
그랬더니 야속한 남편의 반응
"거봐 내가 어제 마트 가라고 했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계란 한알도 없다고 도시락 어쩌냐고"
당황한 나를 보며 또 무심하게 한마디 툭
"편의점이라도 가봐, 뭐라도 있겠지."
"아 맞다. 갔다 올게!!"
겉옷만 대충 걸치고 편의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집 앞에 환하게 불 켜진 편의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이가 요청한 문어소시지용 비엔나 소시지는 구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도시락에 넣을만한 몇 가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잠에서깬 아이가 일어나 방에서 나온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상황설명을 한다.
"봄아 있잖아. 엄마가 약속 못지켜서 미안한데, 식재료 배송이 안와서 오늘 문어소세지 못할것 같아. 대신 다른 반찬 넣어줄게 괜찮아?"
"아 왜요 나 문어소세지 먹고 싶은데 힝"
실망한 아이를 붙들고 다시 한번 설득을 한다.
"근데 어쩔수가 없잖아. 우리 식재료가 다른데로 가버렸데. 대신 내일오면 엄마가 해줄게. 약속"
"네... 약속"
우당탕탕 가을소풍도시락 싸기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주머니 가벼운 대학원생 시절, 조금이라도 용돈을 아끼기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도시락이라도 할 것도 없이 대충 밥 조금,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 몇가지 조미김 하나.
학교에 갔다 돌아와 보니 내 방 책상에 툭 하고 놓여있던 투박하디 투박한 보온도시락통.
점심시간쯤이면 차게 식은 도시락을 먹을 딸이 못내 마음에 걸린 무뚝뚝한 아빠의 선물이었다.
"너도 자식 낳아키워봐라. 찬밥먹지말고 따뜻한밥 먹고 다녀."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날이면 괜시리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최고로 예쁘고 맛있는 도시락은 아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먹기를,
이번엔 재료마저 빈약하지만 사랑만큼은 잊지않고 가득 담았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며.
*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https://pin.it/By53owl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