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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Nov 15. 2024

버스여행자 육아일기

주말아침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가 내 품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엄마 오늘 주말인데 뭐 할까요? 오랜만에 버스 타러 갈까요?"

"버스? 그래 좋지. 어디로 가지?"

"어디든요 ~ 2층버스 타고 싶어요!"


아이가 네 살 무렵 산책하다 길에서 만난 버스를 무척 좋아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타는 승용차 보단 훨씬 크고 긴 버스가 좋았나 보다. 그 이후로 종종 버스를 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가끔 우리는 버스 여행자가 되어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정류장에서 제일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 타다가 내리고 싶으면 어디든 내려 다음 버스를 탔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부담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걱정도 없이 몇 시간이고 여행을 하다 간식도 먹고, 또 재미난 곳을 발견하면 잠시 내려 쉬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이와 버스를 타면 좋은 점 몇 가지


1. 기다림을 배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기도 하다. 내가 원한다고 바로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따라 차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고 싶은 곳도 몇 번의 환승을 거치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아가기도 하기에 시간적으로도 제법 기다려야 한다. 버스여행 경험을 통해 아이는 기다림에 대해서 배운다.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풍경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버스 시간 도착시간 적힌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엄마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바로 가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고 이 과정자체가 곧 여행이다.

이번주에는 아이와 난생처음으로 서울에 대중교통으로 다녀왔다. 2층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야 도착하는 곳. 기다림이 힘들 법도 한데, 좋아하는 2층 버스에 타서 창밖을 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 구경을 한다. 재밌는 간판의 그림을 보며 무슨 내용인지 묻기도 하고, 때론 몇 정거장이 남았냐며 열손가락을 쫙 펼쳤다가 하나씩 접으며 도착을 기다리기도 했다.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며 저 멀리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다음에는 저기에도 가보자며 약속을 해본다.


2.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익힌다

처음 아이와 버스여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걱정했던 일은 아이가 버스에서 돌아다니려고 하거나, 소란을 피우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


"봄아 이곳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라 조용히 해야 해. 그리고 위험하니까 함부로 돌아다녀서도 안되고. 이 두 가지를 잘 지켜야만 우리는 또 버스를 탈 수 있어. 언제든 힘들면 말해 내려서 쉬었다 가자."


좋아하는 버스를 또 타고 싶은 마음덕일까, 아이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주었다. 가끔 신이 나면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었지만 내가 조금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자고 하면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한참 에너지 넘치고 장난치고 싶음에도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아이의 노력이 참으로 기특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잘했다며 덕분에 즐거운 여행 했다고 노력해 줘서 고맙다는 말로 칭찬을 건네본다.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경험으로 배운다.


3. 배려의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의 버스여행 중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자리 여유가 있는 버스를 탄다는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가 운행 중에 흔들리는 차에서 서서 가는 것은 나도 아이도 위험하기에 버스가 정류장 가까이 오면 안을 살펴보고 앉을자리가 있는 버스를 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여행은 주말이기도 했고, 평소에도 승객이 많기로 유명한 지하철 라인을 타는 코스가 있었다. 앉을 곳이 없는 빽빽한 곳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 어르신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아가 이리 와 여기 앉으렴 '하신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이도 나도 배려해 주심에 꾸벅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시한다. 이번여행에만도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지하철에서 다리 아프고 사람이 많았는데, 자리 양보받으니까 어땠어?"

"음 ~ 너무 좋았어요."

"그래. 근데 그건 당연히 비켜줘야 하는 게 아니거든. 봄이가 어리고 약하니까 양보해 주신 거야. 엄청 감사한 이이지. 그걸 배려라고 해."


내가 받은 배려를 그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누군가에게도 되돌려 주는 귀한 경험을 직접 해보는 시간이다.


그 외에도 아이는 버스번호를 보며 자연스럽게 숫자를 익혔고 시간도 볼 줄 알게 되었다. 꼭 책상에 앉아 쓰면서 배우지 않아도 관심이 있고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배움이 따라왔다. 또 걷고 또 걸음의 연속인 대중교통의 여행에서 아이의 늘어난 체력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대중교통 간에 환승제도도 잘 되어있고 대중교통비도 저렴한 편이다. 그리고 공원, 도서관, 박물관 같이 공공시설도 관리가 잘 된 곳이 많아서 계획만 잘 세우면 꼭 큰돈을 쓰지 않아도 가성비 좋고 즐거운 하루 일정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비로소 가을을 제대로 느껴본다.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바깥 풍경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내가 사는 동네도 제법 다르게 보이고, 몰랐던 장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도착지에서 무엇을 한 기억보다는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한 그 순간자체가 우리에게는 여행이고 즐거움이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편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클릭 몇 번이면 세상에 온갖 지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효율적인 것만 추구하며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버스여행처럼 조금은 번거로운 이 길을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곳에서 분명 깨닫고 배움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산넘고 물건너 한양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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