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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an 10. 2024

손님 같은 엄마와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일상의 발견

 엄마와 마지막으로 한집에서 같이 산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결혼을 하고 며칠 씩 우리 집에 오가신 적은 있지만 아무리 길어봐야 일주일 남짓, 엄마의 방문이 손님 방문처럼 때론 어색하고 낯설다. 물론 엄마가 집에 오시면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난다. 내가 하는 밥보다 훨씬 맛있는 엄마밥을 실컷 먹을 수도 있고, 아이를 돌보는 일도 엄마가 도와주신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만큼 엄마는 있는 기간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조금 불편하다.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엄마가 지내시기 불편하진 않을까, 같이 뭘 해야 하나 부담스러웠다. 

 

그런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서운한 마음과 함께 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걸 엄마가 알면 서운해하실까?

 

평소에도 엄마와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엄마와 싸웠어라는 말이 그렇게 부러웠다. 싸워도 끊어지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관계. 엄마랑 싸웠다가 영영 우리 관계가 틀어져 버릴까 두려워서 항상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 손님 같은 엄마가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함께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며칠 전부터 기분이 좀 오락가락했는데, 조용히 내 마음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너 요즘 왜 그래?"

"엄마가 집에 오잖아..."


 엄마와의 한 달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등원한 이후 즐기는 오롯한 내 시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엄마와의 관계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민해 봐야 답은 없었다. 엄마는 예정대로 우리 집에 오 실 테고, 엄마의 생활대로 지낼 것이다. 내가 어찌할지 마음만 정하면 될 일이었다.


"힘을 빼자.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아이가 등원하고 난 뒤 같이 커피 한잔을 내려 나눠마신 뒤 우리는 각자 일을 한다. 나는 내일을, 엄마는 엄마도 긴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같이 점심을 먹고, 또다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 반드시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마음만 내려놓아도 한결 편해졌다. 또한 삶의 모든 것들을 다 공유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아주 가까운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내려놓았다. 엄마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셔서 인지 한결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계신다.

  

 늘 혼자 먹던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가 생겼고, 용기가 나면 이런저런 삶의 문제들을 조금씩 나눠보기도 한다. 이제 막 친해진 친구처럼 때론 서로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때론 편하게 우리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터득해 가며 난생처음 주어진 우리의 긴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졌다. 엄마와 딸로, 독립 된 한 사람으로 잘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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