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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주 Aug 14. 2021

부안에서 매창을 만나다

이화우 흩뿌릴 제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울며 잡고 이별한  

추풍낙엽(秋風落葉)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익숙한 시조다. 기억을 더듬으니 부안에는 매창이 있다.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시조임에 반해 매창이란 이름은 황진이에 비해 덜 익숙하다. 부안으로 가는 길에 다행하게도 생각나서 매창공원에도 가보기로 한다. 매창을 추모하여 만든 공원 내에는 매창 묘도 있고 시비도 세워졌다고 한다. 매창 테마관도 있다고 하니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매창을 검색하는 수고는 덜었다. 먼저 테마관에서 매창을 만나고, 공원을 걷고, 묘 앞에서 잠시 추념하는 시간을 가지면 되겠다. 애초에 길 나설 때 목적이었던 곰소항 삼대 젓갈집으로 먼저 간다. 오 년 전 다녀갔던 기억이 생생해 그동안 자주 우리 추억에서 소환되던 곳을 다시 가보기로 약속한 날이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곰소항은 젓갈 명소답게 분주하다. 이 길이 기억나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그만큼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 내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는 뜻일까.




오늘 내가 꼭 들르고 싶은 곳인 염전과 슬지 제빵소를 남겨두고 매창 테마관으로 간다. 조성된 지 일 년이 되지 않은 곳답게 새 건물 냄새가 난다. 입구에 앉아 있던 분이 웃으며 일어선다. 문화해설사인가. 테마관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는 그녀가 뒤에서 머뭇머뭇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희에게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환하게 밝아지는 얼굴을 보니 부탁이 반가우셨나 보다. 입구에 매창 초상화가 걸렸다. ‘생김새가 곱지는 않은 기생이구나. 그렇다면 그녀 매력은 시 짓고 거문고 타는 솜씨와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웠던겐가.’ 아름다운 얼굴이 아닌 게 나는 왜 반가운걸까. 다만 외양이 예뻐서 매력적인 것은 본인의 노력이 아니지 않은가. 타고난 복락일 뿐. 매창 초상화를 그린 김호석 화백은 매창 혼백을 담으려는 정성으로 어수대와 금대에 올라 매창을 느끼고, 그 당시의 유골을 직접 만져보았다고 한다. 부안 여고생 다섯 명 얼굴을 원형으로 삼았으며, 매창 묘역에서 가지고 온 흙으로 안료를 만들어 얼굴과 손을 채색했다고 한다.


스무 살 매창과 마흔여덟 살 유희경이 지금도 회자되는 까닭은 큰 나이 차뿐만 아니라 보편적이지 않은 신분인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창(이계랑 1573~1609)은 부안에서 태어나 서른일곱 살에 부안에서 죽었다.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힌다. 아전 하급 관리 서녀로 태어난 계랑은 관기였고, 스스로 기명(妓名)을 매창이라 지었다. 시를 잘 지었고 무엇보다 거문고 연주가 탁월했던 매창은 죽음 앞에서 거문고와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황진이보다 반세기 정도 늦게 살았고 유희경에게는 정인이었고, 허균에게는 문우였다. 매창 이름이 세상으로 알려지고 그녀 작품이 전해지는 데는 허균과의 만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봉유설>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수광과 동서간이기도 한 허균은 여러 자리에 매창을 소개했고 작품을 소개했다. 행운이란 준비됨과 기회의 만남이듯, 매창의 재능이 허균을 만나 세상에 알려졌겠구나 생각하니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가볍지 않은 일이다.




유희경은 천민 출신이나 한시를 잘 지어 당시 사대부와 교유했으며 자기 집 뒤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유명 문인들과 시로써 교류했다. 서경덕의 문인이었던 남언경에게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장례의식에 특히 밝아 나라의 큰 장례나 사대부가 장례를 예법에 맞게 치르도록 지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천민 출신이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다. 전란 이후 격식에 더 엄격해지는 사회 분위기는 장례를 엄격하게 지내는 형식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 유희경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한몫했다. 임진왜란 중에 중전을 호위하며 피난 가 있느라 매창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연시가 작품으로 남았다. 몽테뉴에게 라보에티가 있었기에, 또 먼저 떠나버렸기에 <수상록>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처럼 매창에게 유희경이 있었고, 만날 수 없게 되었기에 <이화우 흩뿌릴 제>라는 작품이 탄생한 거다.


순수한 휴머니스트로 일컬어지는 매창 문학은 진솔한 사랑의 감정을 담고 있다 평해진다. 조선시대 기녀 문학을 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당시 여류문학을 짚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기생이라는 특별한 신분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주체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신분에 대해 한탄하거나 가슴 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결한 지조와 기품 있는 삶의 자세를 지켜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신분을 넘어서 주체적인 삶을 살며 사랑을 지켰기에 같은 신분의 아전들이 비용을 내어 출판해준 것이다. 당시 종잇값과 인쇄 상황을 고려한다면 녹록지 않았을 텐데 매창은 기생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집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매창집>에는 58수 한시와 시조가 한 수가 담겼다. 개암사 승려들이 목판본을 만들었으며 그 목판본은 지금도 개암사에 전시 중인가 보다. <매창집>은 현재 하버드대학 도서관, 간송 문고,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 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다. 소장처마저도 예사롭지 않아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테마관에서 나와 공원을 향해 걷는다. 주민들을 위한 동네 공원이다. 운동기구가 곳곳에 놓였고 꽤 신경 써서 지은 놀이터도 있다. 문화해설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대로 공원 왼쪽으로 가니 시비가 둘러져 있는 한가운데 매창 묘가 있다. 묘 앞에는 이례적으로 묘비 두 개가 세워졌다. 사후 45년이 지난 1655년에 비석이 세워졌고, 1917년에 또 하나의 비석이 세워졌는데 '명원 이매창 지묘(名媛李梅窓之墓)'. 기생이 아니라 재주 있는 여인으로 씌었음은 눈여겨 볼만하다. 매창 무덤이 있던 이곳은 공동묘지였는데, 그녀가 죽은 뒤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 뜸'이라고 불렀다. 가족 없이 죽은 여자를 300년 넘도록 오며 가며 나무꾼들이 보살폈다고 하니 매창의 매력을 되짚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이다. 유희경도 매창도 신분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숨죽이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고 나니 더 매력있는 인물이 되었고, 이제 알았으니 다음번 부안행은 매창 문학기행으로 코스를 짜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안 하면 떠오르는 변산반도, 채석강, 내소사가 아니라 테마가 있는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겠다. 테마관 - 매창공원 - 금대 - 어수대. 부안을 문학기행처럼 오려면 그럴만한 이들과 팀을 꾸려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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