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 유럽에서의 국제학교 생존기
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유럽 생활은 나에게 실보다는 득이 많은 삶이다. 유럽에 닿자마자 정복하리라 하고 달려들었던 현지어는 끝끝내 정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아침 산책길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치는 현지인들과 미소를 담아 건네는 '도브리덴'으로 나누는 아침 인사는 언어의 유창성과는 상관없이 그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비록 간단한 인사와 숫자 세기 정도가 4년 동안 내가 터득한 전부이지만 그 짧은 인사말로도 아침이 가져다주는 상쾌한 기분과 서로 하루의 안녕을 빌어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변명을 하자면 현지어의 낭만보다 내게 시급하고 절실했던 건 생존을 위한 영어였기 때문이다.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다른 이곳에서 이방인으로써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지' 라며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 유럽에 도착해서는 영어가 안 되는 아이의 국제 학교 적응과 이를 제대로 도와줄 수 없는 엄마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이 원망스러웠다.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를 위해 노트 뒤에 할 말을 적어서 더듬더듬 읽기도 했었고(하고 싶은 말을 문장으로 얘기해야 하는데 원어민의 눈을 보며 대화를 하려니 주어 동사를 내뱉고 그 이후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하애 지더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지도 방향을 상담하러 나간 자리에서는 이미 나의 실력을 간파하고 학교에서 통역 학생을 붙여 주었다. 아이도 의사소통으로 학교에서 애를 먹는데 엄마까지 영어 실력이 안되어서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니 앞으로의 유럽 생활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원망하고 탓만 할 수는 없는 일,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다고 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나 스스로 영어 실력을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의 유럽 생활의 첫 목표는 '영어 마스터하기'가 되었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토익을 조금 끄적여 본 것으로 영어와 나의 인연은 마지막이었고, 영어 스피킹이라고는 중학교 시절 배운 하와우 땡큐 앤유만이 머리에 맴돌 뿐 그 어떤 영어의 소리도 내 입 밖으로 내어 본 적은 없던 나였는데. 30대 중반에 새삼스레 영어 실력 마스터라... 하지만 영어를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삶의 질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것이고 아이는 아이대로 언어 문제로 억울한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 공부도 하며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차라리 아이와 함께 등교하고 하교하는 방법을 택했다. 든든히 아침을 먹이고 한 시간을 달려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면 나는 학생모드로 전환해 공부 스케줄을 짰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부모 대상 무료 영어 수업을 주 2회 기초만, 중급반 이어서 2시간 듣고 쉬는 시간에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스톤이란 미국 원어민 선생님이 가르치셨는데 왕 왕초보인 나를 위한 기초반 수업에서는 비록 내가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선생님이 하는 말이 뭔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캐주얼하게 말하거나 중급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는 수업의 80%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들리지만(hear) 들리지(understand) 않는 매 수업 시간들이 절망스럽게 느껴졌고 학기 초 의욕적으로 영어 수업을 함께 시작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집에 돌아갈 옵션이 없었고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항상 내 고정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아침 수업을 마치고 학교 주변의 식당에서 간단히 드녜(dnej_오늘의 메뉴처럼 저렴한 가격의 점식 식사) 메뉴를 먹고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현지어인 슬로바키아어 수업을 들어갔다. 이 역시 주 2회 2시간.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에는 현지어를 정복하리라고 마음먹고 의욕에 활활 불타올랐다. 하지만 수업에 몇 번 참여하다 보니 나의 그런 바람은 순전한 헛된 기대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자타공인 한국의 교육 기술과 노하우, 학원 시스템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현 교육 시스템의 내용의 적합성이나 교육/평가 제도의 효율성은 논외로 제쳐두자. 한국은 자타공인 어떤 분야 든 간에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속성반 집중반이 잘 갖추어서 있어 효율적이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 핵심 내용을 이수할 수 있도록 엑기스만 뽑아 강의를 해주기 때문에 잘만 따라온다면 학생들의 실력을 쑥쑥 올려준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 있던 나는 여기서도 내심 그런 노하우를 사용해서 가르칠 줄 알았는데, 6개월을 배웠어도 교재의 1/3만 진도를 나갔을 뿐이고 발음, 숫자, 일상생활 단어와 약간의 문법이 다였다. 한국이었으면 무엇을 배우든 기초는 마스터했을 시간인데,,, 나름 슬로바키아어 과외도 하고 전문적인 물색 하며 새로운 언어에 몰두해 보려고 했으나, 모든 상황이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영어 이외의 새로운 언어에 시간을 또 쓰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당시 내게는 영어가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다. 이 둘을 병행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여하튼 이렇게 학교에서의 슬로바키아어 수업까지 듣고 나면 아이가 하원 할 시간이 맞춰지고 픽업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매일매일 반복됐다.
학교에서의 생활을 1년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고 좀 더 전문적인 학원으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브라티슬라바 시내에 있는 영국 어학원이에 가서 상담 날짜를 잡고 스피킹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커리큘럼은 beginner, intermediate, upper-intermediate, advanced 이렇게 4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면접을 보고 얻은 결과는 놀랍게도 upper-intermediate가 나왔다. 영어와 아이 케어에만 신경을 쓰고 일 년을 보냈더니 1,2 번째도 아닌 3번째 단계가 나와서 나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보통 여기서 영어를 처음 접하는 나 같은 엄마들은 beginner나 조금 했다 하는 사람들도 intermediate 등급이 나오기 마련인데 얼떨떨하고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는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다행스럽다'라는 감정이 컸다. 사람들과 딱히 어울리지 않고 혼자 바쁜 엄마, 학교에 사는 엄마로 아웃 사이더로 이미지 포지셔닝이 되어 있었는데 그 일 년 동안 아이도 이제 학교에 적응을 많이 해서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고 엄마도 영어가 많이 늘게 되었다. 이런 소식이 퍼졌는지 어쨌는지 나에게 영어 스터디를 같이 하자는 제안도 오고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영어 실력에서 하향 평준화의 길을 택할 수는 없는 일, 나는 좀 더 확실한 아웃 사이더를 지향하며 과감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국제학교의 학부모회의 급인 PSG모임 가입!!
PSG(Parents support Group)는 말 그대로 학교의 행사나 일정을 돕는 학부모들의 모임이다. 그 모임에는 미국 네이티브인들이나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학부모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학교 행사 일정을 잡고 업무를 분담하는 일들을 맡고 있다.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지만 아무래도 영어가 되지 않으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되고 모임의 해드들이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해야만 하는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기에 영어가 제2 외국어인 사람들은 선뜻 가입할 마음이 들지 않는 모임이다. 굳이 이 나이에 되지도 않는 영어로 주눅 들 필요가 있을까 내가 참여하지 않아도 학교는 잘만 돌아가는데... 사실 나는 학교 운영보다는 나의 영어 실력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학교에서 처음 이 모임의 존재를 알았을 때 열심히 공부를 해서 1년 후에 꼭 가입해서 활동하리라는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그 후로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토록 바라던 나의 계획을 실행시킬 날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나의 영어 실력을 변명 삼아 가입하기를 계속 미루고 있었다.
학원에서 upper-intermediate 등급이 나왔다는 것은 중급 수준임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사실 학원에서의 수업은 예습과 복습을 해서 텍스트를 숙지하고 숙제를 해가면 큰 무리가 없는 공부였다. 이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일상 회화는 전혀 다른 영역의 세계였다. 과연 내가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을 수 있을까, 질문을 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1년 했던 고민과 걱정이 그대로 나를 괴롭혔고 직감적으로 이 질문은 영어를 공부하는 누구나 언제든 항상 접할 수 있는 고민이기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실전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앞으로 천천히 풀어 나가겠지만 이 모임에서 사귄 친구들의 교류, 그 과정에서 느낀 경험과 감정은 나를 내게 익숙한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전혀 낯선 감정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예의상으로 물어본 티타임에 선뜻 응했다가 3시간 동안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만 있다 서로 미안한 상황을 만들어낸 내가 비참하고 불쌍해서 집에 오는 차에서 엉엉 울었던 적도 있고, 이는 고맙게도 내 자존감 회복을 위한 영어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타오르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학교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