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30일 에세이 서른 번째.
내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관람했던 영화는 헤드윅이었다. 열정적인 연기에 압도된 나는 몇 번이나 영화를 다시 보았고, 한동안 OST 듣기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헤드윅이 토마토를 터뜨리는 장면이라든지, ‘The origin of love’라는 곡을 부를 때 반으로 나뉘어 흩어지던 사람들이 나오던 장면 같은 단편적인 부분 이외엔 어쩐지 잘 기억이 안 난다. ‘20대의 첫 영화 데이트였던지라 나대는 가슴을 주저앉히려 애쓰다가 제대로 못 봐서’라던지, ‘출산 후 기억력 감퇴’와 같은 이유는 역시 핑계겠지만 말이다.
결혼 전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일상적인 데이트 코스였는데, 극장에 쏟아부은 돈이 무색하게 그 다양하고 볼만했던 이야기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는지. 하지만 어떤 영화를 보았든 간에 항상 반복되던 그 날의 마음이 있었다. 영화관에 입장한 나는 늘 상영관의 높은 천장과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넓은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사이 어느새 암전이 되고, 정적은 팝콘 뒤적이는 소리를 덮었다. 영화의 중간에 눈물 흘리고 소리치는 배우들의 절절한 연기가 가슴에 내리꽂히면, 편하게 기대앉아 팝콘이나 먹던 나는 괜히 허리를 세워 자세를 고쳐앉았다. 진흙탕에 구르고 빗속을 누비며 액션 연기를 소화해내는 배우들을 볼 때면, 그 열정에 감동해 무릎이라도 꿇고 경건하게 관람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이윽고 영화가 끝나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편이었다. 창작을 위한 산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해낸 투사들의 이름들을 보지 않고 나가는 건 왠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한 논리 같지만 말이다.
내용은 잊었을지언정, 극장에 입장할 때의 기대감과 엔딩 후의 여운, 그리고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멋진 작품을 보고 즐거웠던 마음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사실 극장의 팝콘값은 가끔 좀 비싼 것 같긴 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felixmoonee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