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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fynina Jan 23. 2024

[아녜스 바르다] 바르다가 보여주는 여성의 삶

아녜스 바르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1977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l'une chante l'autre pas)>


좋은 작품을 만나면, 이를 만든 이의 삶과 생각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로 아녜스 바르다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이내 그녀의 발자취를 좇기 시작했다. 먼저 영화에 대한 소개를 한 후, 영화감독이자 한 명의 여성인 아녜스 바르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등장인물 수잔과 폴린은 서로 매우 다른 성향의 여성이다. 수잔에 비해 폴린은 여성으로서 마주하는 모순들에 보다 민감하고, 주체적이라 할 수 있다. 보기에도 매우 달라보이는 이 두 여성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 영화는 수잔과 폴린, 두 여성의 우정을 중심으로 68혁명 전후 여성의 삶과 고민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아녜스 바르다, 1977)

영화의 초반부, 수잔은 불안정한 환경에서의 예기치 못한 임신에 낙태를 원한다. 하지만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의지할 곳 없는 상황이다. 이를 본 폴린은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돕고자 한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서 돈은 얻어냈지만 당시의 프랑스에서 낙태는 불법이었기에, 수잔의 낙태를 위해 발로 뛰며 방법을 모색하고 다닌다. 그 과정에서 학교 선생님께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자유의지는 철학이나 윤리의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로 입증되는 정치적 상황이라고 하셨죠?
행동의 철학이라고.


그녀의 솔직함과 용감함은 따뜻함을 뿌리로 둔다. 선생님 마저 폴린의 질문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씁쓸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신념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폴린의 담대함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오해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수잔을 돕고, 곁을 지키는 폴린. 수잔은 분명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결국 폴린의 도움으로 낙태는 했지만, 수잔은 남편(정식 남편은 아니지만)의 갑작스러운 자살으로 결국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가족들은 수잔을 위로하기보다는 멸시에 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수잔은 자립하기 위해 꾸준히 일하며 돈을 모은다.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아녜스 바르다, 1977)


수잔과 떨어져 있는 사이 폴린은 보다 전투적으로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시위를 하고 페미니즘 노래를 만들어 여기저기서 공연을 한다. 그리고 낙태법 폐지 시위현장에서 수잔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한층 성장하여 이제는 여성으로서 같은 신념을 지지하며 연대하는 둘의 우정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시간들을 마음 깊이 공유하고 있기에, 짧은 시간동안 많지 않은 말이 오갔음에도 그들의 내밀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아녜스 바르다, 1977)


이후 이들은 멀리서도 엽서를 매개로 서로를 의지한다. 수잔은 프랑스 남부에서 상담사로 일하며 더욱 독립심과 정체성을 찾아가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폴린은 계속하여 밴드활동을 하며 페미니즘 노래를 부른다. 이란 남성 다리우스와 연애를 하며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결혼도 하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를 거부하고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다. 폴린은 아이도 낳는다. 그리고 혼란스러워지지만 결코 그 혼란에 지배되지 않는다. 모성애에 갇히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데에 존재하는 내적 갈등을 기반으로 가사를 쓰고 노래하고, 공연한다.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아녜스 바르다, 1977)


꾸준히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김으로서, 자신의 삶이 곧 자신의 철학을 대변하는 폴린을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폴린은 자신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삶으로서 증명해냈다. 아마 폴린은 그 때 자신의 질문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 폴린의 내면은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는 폴린만의 내적 갈등이자 의문이 아닌 관객 모두가 품은 질문이기도 하다. 바르다는 영화 역사가이자 평론가인 장 나르보니(Jean Narboni)와의 인터뷰에서 폴린의 내레이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 이야기 같은 거였다면 내레이션을 하고 싶지 않았을 거에요. 물론 저도 저만의 감성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요. 영화감독으로서 두 소녀의 가상적 대화에 제 목소리를 더하고 싶었어요. 그들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죠. 영화는 모든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고, 함께 잘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전달하고자 해요. 그래서 삼중창이 적절한 해법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요. 화면 위로 흐르는 내레이션은 이야기에 낭만적 측면을 더하는 역할을 해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랑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탐구에 초점을 맞추죠. 두 사람은 임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의 삶을 꾸려가면서 여성으로서의 연대에도 관심을 갖죠.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장악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저 영화에 참여하고 싶었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 1977년 5월 발행된 <카이에 뒤 시네마>에 수록된 아녜스 바르다와 장 나르보니의 인터뷰 중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아녜스 바르다, 1977)

영화는 수잔의 가족과 폴린의 밴드가 자유롭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끝이난다. 폴린과 수잔, 두 여성의 우정은 자극적인 사랑 서사에 비견해 부드럽지만 가슴 시릴 정도로 감동적이다. 


저는 여성들 간의 우정을 재평가 하고 싶었어요. 폭력성, 부드러움, 일관성, 연대의 성질을 포함하는 하나의 느낌으로서의 우정을요. 우정은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후유증도 만만찮죠. 그럼에도 우정은 필수적이고, 살아 움직여요. 함께하는 즐거움이죠. 예를 들어, 보비니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함께 구호를 외치고 군중의 일부가 되잖아요. 단지 이사람을 만나서 기쁜 걸 넘어, 함께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더 기쁘게 느껴져요. 같은 신념을 위해 싸운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깊이 감동하고, 흥분도 하고요. 함께 말이죠.

영화 말미에서도 같은 상황을 볼 수 있어요. 한 사람은 결혼한 상태이고, 다른 한 사람은 더 이상 아니죠. 하지만 두 사람은 스스로에게 진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같은 감정을 느껴요. 영화를 보면 이런 이미지가 나오죠. 호수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어요. 흐르는 물이 멈추면 그곳엔 일종의 마법같은 빛이 생겨나 백일몽을 불러일으키죠. 그곳, 그날, 그 순간, 두 사람은 일말의 의구심도 없이 완전한 형태의 우정을 느껴요. 왜냐하면 그들은 확장된 개방적 가족 내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우정도 바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고요. 제도적 가족 형태 내에서는 여성들의 우정이 자리할 공간이 없어요. 설령 우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요. 여성들은 사회적 친분이라는 게임속에서 타인을 만나는 경향이있고, 때로 친구 사이로 발전하죠. 하지만 '깊은' 우정은 주변부적 삶 속에서만 가능해요.

- 1977년 5월 발행된 <카이에 뒤 시네마>에 수록된 아녜스 바르다와 장 나르보니의 인터뷰 중



바르다의 영화에 담긴 '모순'


나는 모순을 다룬 작품들을 좋아한다. 모순은 삶을 닮았고 삶은 모순을 닮았기 때문에. 바르다의 영화는 모순을 포함한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도 페미니즘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루면서도 영화의 결말에서는 수잔 가족의 목가적인 장면으로 마무리 되기에 약간의 모순적인 지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바르다의 영화에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장치만으로 진행되는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어 공감할 수 있다. 


제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 주관과 객관 사이 그리고 클리셰와 클리셰 안에 있는 것들 사이의 변증법이에요.
나아가 정신 영역의 클리셰들과 실제 생활의 이미지들 사이의 변증법, 모호성 그리고 모순이 제 모든 영화의 주제인 것 같아요.
제 모든 영화는 그러한 모순-병렬 구조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모든 모순, 견뎌내기 힘든 이 모순들이 저를 자극하고 제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이러한 경험들을 재료 삼아 형태를 만들죠. 사람들을 울릴 목적은 아니에요. 하나하나 형태를 만들고 모양을 잡아가요. 그럼 서서히 영화의 면모를 띠게 되죠. 



여성이자 감독으로서의 아녜스 바르다


저는 여성이에요.
한 여성으로서 직관에 따라 작업하고 보다 명민해지려 노력해요.
느낌과 직관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기뻐하고, 
의외의 장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바라보죠.


바르다는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없는 픽션은 있을 수 없고 미학적 의도가 없는 영화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말해왔다. 그리고 의외의 장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존재하는 픽션, 미학적 의도가 존재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에 막중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든, 소설이든 현실을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하거나 혹은 반대로 픽션에 현실을 반영한다. 즉,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에 존재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핑계삼아 솔직해 질 수 있는게 아닐까. 특히 바르다는 여성의 심연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지하고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솔직하게 내보여준다. 그렇게 바르다의 영화를 보는 우리는 어떻게 표현할 지 몰랐던 내적 질문을 드디어 완결된 문장으로 마주하게 된다.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감독으로서 당시 여성의 삶에 대한 통찰을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그리고 아주 꾸준히 보여준 그녀의 삶과 영화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특히 바르다의 영화가 대체로 약 50년 전을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의 신념에 기반할 것이다. 수잔과 폴린, 그리고 아녜스 바르다의 삶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지탱해 나갈 나의 가치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 첨부된 인터뷰들은 모두 출판사 마음산책의 도서『아녜스 바르다의 말』에서 읽어볼 수 있다.

얼마 전 타계했지마나 우리의 영원한 클래식이자 시대의 뮤즈, '제인 버킨'. 그녀에 대한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이 다음주인 1월 31일, 국내에 정식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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