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나는 시벨리우스의 곡들의 우아한 황량함이 미치도록 좋다. 텅 빈 공허함이 처연하고 아름답다. 물론 그의 모든 곡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교향곡 2번 같은 곡에 몰두하면 ‘허공에 삽질한다’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이다.
시벨리우스의 곡들은 원대한데, 베토벤의 우주적 숭고한 아름다움과도 다르고, 듣다가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탈출하는 말러나 브루크너와도 다르다.
원대하지만 황량하고, 황망하다.
황량하지만 고고하고 아름답다.
투명한 겨울 하늘 밑의 눈 덮인 대자연이 떠오르기도 하고, 흰머리의 노신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한 마리 고고한 학이나, 차라리 최승희의 고독한 승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고이 접어 나빌레라!(.. 너무 갔나?)
지독한 고독감을 넘어선 경지에서 느껴지는 경외감과 숭고한 아름다움은, 아마 올라본 적도 없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거나, 나가본 적도 없는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지리하고 고독한 나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이긴다면,
기꺼이 ‘복사꽃 고운 뺨의 아롱질 듯한 두 방울’과 함께 나는 시벨리우스가 듣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