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tton Salam Apr 10. 2023

41. 생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 요리 01

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41

41. 생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 요리 01


지금은 은퇴하신지 꽤 되셨지만, 어렸을 때 큰 아버지께서는 중화요리 주방장이셨다. 큰 아버지는 당시의 어르신들과 견주어도 머리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키가 꽤 크셨다. 그 커다란 키에 밀가루 반죽을 잡은 길고 커다란 팔이 공중에서 거침없이 밀가루를 흩뿌려가며 몇 번 휘적거리면 어느새 수타면이 완성되어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큰 아버지께서는 가끔씩 어린 내가 방문하면 거리낌 없이 주방으로 데려가곤 하셨다.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주방의 강한 불에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커다란 웍도 한번 돌려보고, 어린이 몸뚱이만큼 널찍한 중화 칼로 야채도 잘라보게 해 주셨다. 주방의 분주함과 역동성은 호기심이 극에 달한 어린 시절의 나에겐 흥미진진한 놀이터 같은 곳이었고, 그곳에 가는 날은 놀이동산을 가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때의 경험은 내게 ‘주방’ 이라는 공간을 ‘어머니의 공간’이 아닌 ‘요리를 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게 했다. 배가 고프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식구 중 누구라도 주방으로 가서 음식을 만들면 됐다. 요리가 귀찮았을 수도 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자취를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귀찮아서 요리를 안 한다는 기분은 딱히 느껴본 적이 없었다.


흔히들 혼자 살기 시작하면 몇 년간은 열심히 요리를 하면서 자취로망을 펼쳐본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라는 얘길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가서 사 먹거나, 집에서 먹어봤자 배달 음식 정도라고들 한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난 가능하면 집에서는 요리는커녕 음식조차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에서 요리하는 일을 훨씬 오랫동안 고수해 왔다. 재료가 없거나 장비가 없어서 못해본 음식을 제외하면 이거 저거 셀 수 없이 다양한 음식을 해 먹곤 했다. 심지어 여자친구한테 줄 김치도 담가봤다. 명절 때나 복날에는 저렴한 닭을 몇 마리씩 사 와서 삼계탕이나 치킨 가라야게, 꼬꼬뱅(Coq au vin)도 해 먹었고, 생선살을 잔뜩 사와 뫼니에르(meuniere)나 생선살을 활용한 셰비체도 해 먹었다.


다음 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