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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tton Salam Apr 11. 2023

42. 생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 요리 02

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42

42. 생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요리 02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주야장천 요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수한 ‘재미’때문이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했지만 요리자체가 재밌었고 딱히 집에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운동도 덜 했고, 술도 잘 안 마셨고, 할 줄 아는 게임도 없었고(지금도 없다), 만나는 친구들도, 정기적인 모음도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독사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삶이었다. 여하튼 은둔생활자의 삶이란 뭔가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기 참 좋은 듯하다.


사실, 나는 몇 년간의 요리경력이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첫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주방이었다. 보통은 서빙이나 주방보조부터 시작하는데 어쩌다 보니 주방에서 바로 음식을 만드는 일을 거의 떠넘겨지다시피 했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샐러드와 파스타를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매뉴얼도 간결하고, 재료준비도 많지 않고, 조리법도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다.


두 번째 경력은 외국에서 살았을 때다. 한국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뉴질랜드에 요양차 떠났는데 마냥 놀고먹기는 무료해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경험을 경력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럴싸하고 괜찮을 법한 온갖 경력과 이력을 써서 식당을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뿌렸다.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캐주얼 일식요리전문점이었다. 거기에서 두 번째 요리경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 식당에서는 우동을 비롯한 각종 일식 면요리와 돈부리같은 덮밥요리, 찜이나 탕, 국 같은 요리들을 많이 배웠다.


세 번째 요리경력도 같은 나라에서 얻었다.

일식요리전문점은 파트타임이라 점심장사 때만 일을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후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한국은 돌아서면 유흥이나 오락거리가 있지만 뉴질랜드는 5시만 돼도 도심의 모든 주류판매점이 문을 닫는다. 이후에 할 일이라곤 잔디를 깎거나 개와 산책하는 일, TV를 보다가 9시 전후로 잠드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저녁에는 퓨전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낮에는 일식당, 밤에는 퓨전레스토랑, 이른바 투잡을 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외국은 예나 지금이나 언어가 안되면 직장은커녕 파트타임도 구하기 힘든 곳이다. 그럼에도 일을 두 개나 얻어서 할 수 있다니. 신의 가호는 뉴질랜드에도 있었나 보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던 투잡을 외국에서 해보다니.

이렇게 세 번째 요리경력도 쌓게 된다.     


이때 쌓아온 경력들이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에겐 주방을 향한 어색한 마음이나 두려움은 없게 했다. 재료와 도구만 있으면 뭐든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나 같은 은둔생활자에게 꼭 잘 어울리는 재밌는 취미이자 특기다. 지금도 해보고 싶은 요리나 도전해보고 싶은 음식들, 가보고 싶은 식당들이 참 많다. 그냥 귀국하고 바로 유튜브를 했어야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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