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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록 남기기

싦의 선물 같은 시간

8년 전 '공간 따숨'이라는 3~4평의 윈도갤러리를 몇몇 작가들과 운영한 바 있다. 작은 공간은 특별한 날 이외에는 문이 닫혀있지만 365일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유리 너머로 들여다보는 전시장이다. 어두운 밤에 밝히는 그 공간은 인구가 비교적 적은 소도시 한 골목의 등대와도 같았다. 


주변 분들은 밤새 불이 켜져있는 이 공간을 기특하게도 '시'에서 하는 줄 알았단다. 어떤 정신없는 인간이 밤새 전기를 켜두냐고. 하지만 수도나 화장실 시설이 없고 엘이디 전구 몇 개로 공간을 밝히는 것은 비교적 적은 임대비와 공과금 만으로 운영가능했고 저녁에도 지나는 이에게 불을 비추는 공간이 되었다. 그 따숨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기금 조금과 뜻있는 작가들, 지인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이어졌다. 그래서 의미 있는 전시, 일반 전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전시 등을 만들고 이어갔다. 


그때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중 따뜻했던 하나의 전시를 첫 번째로 소개하고자 한다. 최경순 채영숙 2인전이 그것으로 '딸 그리고 어머니'전 말 그대로 모녀전이다.  

당시 87세 최경순


당시 87세 어머니는 딸 여섯을, 딸은 어머니를 그렸다. 따님은 어머니와의 복잡한 감정을 전시를 통해 풀었고 어머니는 어느덧 딸 여섯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여섯의 딸들은 똑같이 생겼고 그 연세에 이런 그림을 그리신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전문작가들은 아니지만 지나는 이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기는 충분했다.

그 후 따숨은 임대비 인상을 요구하는 집주인과 뜻이 맞지 않아 오래 견디지 못하고 2년 반 만에 막을 내렸다. 수백만 원의 인테리어 비용과 손수 청소하고 많던 쓰레기더미를 치웠던 시간은 야속하고 얄밉게도 집주인 좋은 꼴만 시켰다. 작가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은 이 소도시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길게 가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던 차에 이 번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이 두 분의 전시를 다시 기획 초대하게 되었다. 세월이 8년 지났지만 녹슬지 않은 그 모녀의 솜씨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사는 곳은 거리를 거닐다 가끔은 누군가의 따뜻한 서사가 담긴 순간을 우연히 만나는 아름다운 곳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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