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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10. 2023

대한민국은 극장국가인가?

극장국가의 의미

얼마 전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한 국회의원이 TV에 출연해 "대한민국은 지금 극장국가이다."라는 말을 했다.
국제회담과 외교에 바쁜 일정을 수행하는 대통령의 행보를 비난하는 발언이자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언사였다.
일본의 도쿄대 다하루키 교수가 19세기 북한을 극장국가라고 표현했는데 3대째 내려오는 김일성 일가의 정권 세습 및 김일성에 대한 신화적 신격화와  현재에도 북한의 국방력을 과시하는 수많은 행사들을 비유해 지적한 표현이다.

경제는 파탄이 나고 굶어 죽는 국민들이 증가하는데도 핵무기 개발에 병적으로 광분하는 북한의 모습에서 보여주기 위한 극장과 흡사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초로 '극장국가'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20세기 가장 저명한 인류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James Geertz)이며 '극장국가 느가라(Negara)'를 1979년에 출판하면서부터 인용했던 말이다.

클리퍼드 기어츠는 그의 저서를 통해 식민지 이전의 인도네시아 문명의 시초인 '느가라'를 설명하며 신화로서의 종교가 의례와 예식을 통해 정치를 나타내는 발리의 전통을 서술한다.

발리인들에 형상화된 종교가 발리의 정치이자 의례와 의식이 지위의 존엄을 나타내는 관례였다는 것을 그의 책 '극장 국가 느가라'를 통해 해석했다.

일관된 느가라에 대한 서술 독보적 발리의 모습사실적으로 묘사했복잡, 미묘한 발리의 정치, 사회 구조를 이야기한다.

먼저 '극장국가'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리의 전통 사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으며 발리의 지형적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발리는 적도 남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최고봉인 아궁산은 활화산이고  높이는 3031m 나 되며 면적은 제주도의 3배가 조금 넘는다.

신혼 여행지로 한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지이며 뮤지컬 영화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남태평양'의 배경이 되는 작은 나라이다.

고대 발리의 궁전들은 모두 해발 100m의 고산지대에 자리 잡있었으며 력한 왕권이 없던 발리는 작은 나라임에도17세기 이후 9개의 나라로 분열되었고 서양의 열강, 네덜란드에 의해  1903년 완전히 병합되었다.

고대부터 발리의 상위 신분제도는 브라흐마나, 사뜨리아, 웨시아이며 그 외 다수는 수드라 계층이다.

브라흐마나는 종교와 국가의 모든 의례를 맡은 최상위 계급이었으며 발리의 재판관도 브라흐마나 출신이었고 브라흐마나는 정치와는 무관했으나 강력한 종교적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사뜨리아와 웨시아는 왕족 가문의 귀족이지만 발리의 복잡한 정치 구조 때문에 중세 봉건 귀족과 같은 권력을 지닌 계층은 아니었다.

발리의 친족 체계인 '다디아'는 혈연관계를 의미했고 가문의 신분 상승을 위해 영주 등 더 높은 계급과 혼인을 했던 일부다처체의 사회였다.

결혼을 통해 신분을 높인 이들을 '와르기'라 불렀으며 신분 계층은 귀족과 농민으로 구분되었지만 신분 제도 역시 무척 복잡했고 농민도 각기 다른 권력을 소유했다.

농경 사회이던 발리는 '수박'이라는 계급이 존재했는데 수박은 농업과 관개 시설을 맡은 계층이었으며 발리의 지형이 산악지대이었기 때문에 계단식 농경지가 많았다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고원 지역의 영주와 평야 지역의 영주의 권력이 서로 대립했고 영주의 지배권은 토지, 즉 식량을 수확하는 농경지의 소유에 따라 차이가 많았으며 친족 계급의 종적 관계는 영주권의 횡적 관계와 결코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발리의 정치 구조는 다른 나라의 왕족 체제와 봉건 제도의 개념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구조이며 무엇보다 화려하고 복잡한 의례와 의식을 중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발리를 극장국가로 일컫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신들의 나라라 불리듯 발리는 호칭, 예법, 복장 등 화려한 종교 의식과 의례가 나라를 대변하는 국가였으므로 당연히 종교 의례의 독점을 갖는 브라흐마나의 권력은 대단했으나 영주들은 정치와 경제력으로 사제 집단인 브라흐마나의 권력을 견제했다.

제로 발리는 사제, 왕족, 영주들이 각기 다른 권력을 행사함에 따라 단일한 정부가 존재지 않는 나라였다.

네덜란드가 침략하기 전 발리는 자살 의례라는 기괴한 의식도 있었으며 왕이 사망하면 후궁들이 스스로 분신해 자살하는 '수띠'라는 장례식도 존재했던 나라였다.

서양 기독교 개념과 동양의 유교 개념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체제의 나라였으며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면서 자살 의례와 같은 해괴한 의식은 사라졌다.

그들의 종교 의식은  신들의 세계를 표방했고 화려한 의례는 발리의 산앙이었으며 관례적  종교 의식을 통해 배 계급은 발리인들을 세뇌하고 통합하려 했다. 

상징적 권위와 경제적 지배권을 그들의 종교를 통해 강화하였으나 하나의 정부가 존립하지 않았던 발리의 의례는 결국 지위 유지를 위한 지배층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농업 사회였던 발리에도 '아침 장'이라는 상업시설은 존재했지 특화된 상업 공간에서 수공예품을 파는 장인이나 상인들 대부분은 발리인이 아닌 중국에서 태어나서 인도네시아에 사는 화인이 많았고 무슬림인 아랍인과 소수의 유럽인이 상거래 활동으며 발리에서 출생한 주민은 상업과 교역은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아무리 국가의 존재 가치 독특한 관습과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해도 난해한 종교 의식과 복잡한 정치 체제를 인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화려한 의례와 종교 식을 국민들에게 상징적인 정치 도구로 사용했던 발리는 정작 정치의 실질적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 채 서구 열강에게 정복당했다.  

발리라는 극장국가의 몰락은  어찌 보면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 통치가 보한 문명의 전달의 관점으로만 해석한다면 네덜란드의 침략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서구 열강 입장에서의  만용일 뿐일 것이

그리고 서구정치, 사회가 발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강하다는 사유가 극장국가의 몰락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도 없거니와 어떤 명분으로도 침략 행위에 일말의 정당성도 있을 수 없다.

발리의 의식과 의례적 측면만 조명하자면 '극장국가(Theater State)'라는 표현이 비단 발리라는 나라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가 곧 정치라는 관점에서는 전 유럽에 정교일치를 펼쳤가톨릭도 마찬가지이고 오스만 왕국을 건설한 이슬람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다.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도 극장국가의 면모를 나타내는 성징적 우상이기도 하지만 엄밀한 비유에서 발리의 극장국가 느가라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 서술한 기묘한 발리의 전통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장국가라는 개념을 모두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모르던 발리의 전통과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다만 책의 내용에서 비교할 수 있는 당시의 서구 열강들의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지 않았던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 서열 10위 권에 진입한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지만 근대화를 받아들인 역사가 서구의 나라들에 비하면 너무 짧은 기간이었고 정치, 경제 모든 분야의 발전 과정이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현시대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류는 자본의 혜택을 누리지만 변화의 진통에 이어 경제는 헤어나기 힘든 양극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는 당연한 선진국의 모습이 되었으며 자본주의의 질서가 그렇듯 경제가 변하면 정치도 바뀌기 마련이다.

주목해야 할 사태는 현 정치의 양극화는 경제의 문제로 야기된 대립이며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이 거기에 불을 지핀 현상이다.

야당, 여당, 진보, 보수의 분열은 팽팽한 이기주의의 대립이며 정쟁의 원인은 다름 아닌 양당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반복을 거듭했으며 지금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유럽 선진들의 공통된 실상이다.

지난 정권에서 집권당을 열렬히 지지하던 세력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부 탓을 하고 현 정부에서도 경제 상황이 나쁘면 현 정부의 정책 탓을 하기 마련이다.

거기에다 긴축재정으로 주던 지원금 삭감하면 지지하던 세력도 등을 돌리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예로부터 태평성대는 백성이 살기 좋은 시대였고 백성이 편안하면 당파 싸움도 잦아들었다.

물론 정치적 대립이란 사상적 영향이 불씨가 된 것은 사실이나 글로벌 세상의 자본의주의 물결에 사상의 불씨는 꺼지기 마련이다.

러시아와 중국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복지국가를 자랑하던 유럽의 나라들도 경제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과시적인 보여주기식 북한의 정권극장국가라고 일컫는 것은 세계가 공감지만 대한민국을 극장국가에 빗대어 한 발언은 '극장국가 느가라'의 정한 개념을 이해했는지 의문이 든다.

어찌 보면 현시대의 보여주기식 정치는 발리의 극장국가가 아니라 다름 아닌 포퓰리즘이며 실속 없는 그릇된 과시는 파멸만 재촉한다는 사실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보며 깨달아야 한다.

오만한 영국도 브렉시트를 포기하고 태평양으로 향하고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 회담도 실상은 세일즈 외교이다.

외교 역시 실속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세계가 증명하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장 우려해야 할 현상은 한국이 양극화를 넘어 이기주의 국가로 치닫고 있현실이며 이기주의란 논리도 상식도 무너트리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상식이 안 통하는 극장국가 발리는 선진 열강에 의해 일찍이 무너졌다.


한국은 지금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양극화는 정치적 대립 이전에 분열된 한국인의 정서가 가장 큰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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