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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Dec 31. 2023

서툴렀지만 이겨냈고 성장했다.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용기도 많이 얻은 2023년을 돌아보며...


벌써 2023년의 마지막 날.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글 올리자고 나에게 약속했는데, 12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하마터면 그 약속을 어길 뻔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보려고 2023년 12월 31일 아침에 부랴부랴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2023년의 나는 서툴렀지만 이겨냈고 성장했다.




나의 오랜 숙제

    

올해 초 나의 목표는 2024 전기 대학원 입학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토익 점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하루이틀 만에 정해버리고 무작정 토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가 3월이었다.


대학교 입학하고 5년 간 항상 외면했던 영어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토익공부 하기 싫어서 다른 자격증을 딸 정도로 영어가 싫었다. 그렇게도 외면했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한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토익학원 등록하기 전에 블로그 후기들을 찾아봤는데 한두 달 만에 800점 찍는 글을 많이 봐서 '어쩌면 나도,,,?'라는 기대와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았던 나의 큰 착각이었다.

오후에 학원알바를 가야 해서 9시 수업을 들었는데 매일 6시에 일어나서 출근길에 학원을 간다는 게 가장 쉽지 않았다. 그걸 4개월 내내 했다. 심지어 특강과 시험이 있으면 주말까지 6시에 일어났다. 게다가 숙제 양이 정말 많아서 선생님들께서 알려주신 순서와 방법으로 하면 하루치 숙제하는데 7~8시간이 들었다. 학원 가는 길에 단어랑 LC 녹음본을 듣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첫 시험을 보고 ‘내가 큰 착각을 했구나. 짧은 기간에 800~900점 찍는 사람들은 원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꾸준히 해내려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결국 3개월 차엔 700점 후반이 뜨고 4개월 차엔 800점 초반이 떴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서 3월부터 다닌 학원을 6월에 그만뒀다. 그만둔 뒤에 마지막 토익 점수가 떴는데, 당연히 나는 700 후반이나 800 초반이 뜰 줄 알았다. 웬걸! 860점이 떴다. 너무 놀랐다. 누구한테는 낮은 점수일지도 모르지만 500점 후반의 점수로 시작했던 나에게는 850점을 넘는 건 큰 목표였고 800점 초반 점수도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점수가 확 올라서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느려도 결국 해내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나의 오랜 숙제를 해냈다.






나의 두려움     


토익학원을 그만두니 이제는 운동을 시작하고 싶어졌다. 수영을 배우고 싶었는데 지금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시작하자마자 느낀 건 내가 생각보다 물을 정말 무서워한다는 것. 생각보다 내가 물에 뜨는 게 너무 어려워서 친구들에게 고민이라고 했는데 “토익 했던 것처럼 계속해. 토익점수 오르는 것처럼 잘 뜰 거야.”라는 친구들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7월부터 안 빠지고 계속 나갔더니 8월 중순에는 헬퍼 없이도 꽤 뜨게 되었다. 이전에는 등에 헬퍼 차고 킥판을 두 개 겹쳐 쓴 적도 많았기에 물에 뜨는 내가 신기할 정도였다. 선생님께서 첫날에 내가 물을 매우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재촉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셔서 고마웠다. 그렇게 선생님의 인내심과 장비의 도움으로 잘 뜰 수 있게 됐다.


팔 돌리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갑자기 인턴이 돼서 3개월 동안 수영을 나갈 수가 없었다. 11월 말에 다시 나갔는데 첫날보다 더 떨렸다. 다행히 똑같은 선생님이었고 아는 얼굴들도 꽤 보여서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나랑 같이 시작한 아저씨는 그새 중급반에 올라가셨다. 너무 오랜만에 온 수영장이라서 물에 뜨는 법을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떴다. 호흡이 다시 짧아져서 힘들어진 건 좀 아쉬웠다. 11월 말부터 12월까지 팔 돌리기를 배웠는데 아직도 삐그덕거려서 좀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옆으로 음파를 배우는데 물을 많이 먹을 것 같아 두렵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하다 보면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겁은 적당히만 먹어야겠다.


저번 수업 때 팔 돌리기를 너무 못하는 것 같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너무 못하는 것 같아 그런다고 하니, 선생님이 웃으면서 “그 정도면 잘하는 거예요. 수영선수 될 거 아니잖아요?”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그냥 하신 말씀이지만 나에겐 그 말이 “지금까지 느려도 해냈잖아요. 잘할 수 있어요.”라고 들려서 위안이 되었다.


수영 첫날엔 물에 머리 넣는 것도 무서워했던 나인데 이제는 잘 뜨고 팔 돌리기까지 한다.

속도가 느려도 꾸준히 하다 보면 성장하는 나를 발견한다. 매번 그랬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중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


나는 야구를 참 좋아한다. 나의 전공인 통계와 야구를 접목시켜서 취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대학생 때부터 해왔다. 그러다 7월에 관심 있던 스포츠 데이터 회사의 공고를 보게 되었고 고민 없이 지원했다. 취준 중이었지만 제대로 지원한 건 이 회사가 처음이었다. 지원서를 낸 바로 다음 날 전화가 왔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알바나 대외활동을 제외한 내 인생 첫 면접이라 너무 떨었고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시원하게 말아먹었다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8월 초쯤 합격 전화를 받았다. 나는 ‘정규직(수습기간)’이라는 글씨를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사회초년생이었기에 취업이 됐다는 생각에 기뻤다. 막상 입사날에 보니 수습기간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인턴일 뿐이었다.


특히 나는 내가 생각했던 업무와 너무나도 달라서 인턴 생활 내내 괴리감이 들었고 점점 야구를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첫 주가 지나고 상사와의 첫 상담에서 내성적인 나의 성격에 대해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기에 심적으로도 더욱 힘들어졌다. 첫 상담을 하고 나오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자책하며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 주에는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아, 내가 잘못된 게 아니구나, 여기가 기준이 높은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주는 업무, 과제, 발표, 시험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인턴끼리 사내 카페 가는 것을 눈치 주기도 하고,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상사 자리까지 가서 깍듯하게 인사를 해야 하며, 퇴근도 상사가 가자고 하면 갑자기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일어나야 하는 분위기는 3개월 내내 적응되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숨이 막혔다. 3개월이 되기 직전, 정규직 전환이 어렵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물론 업무, 과제, 시험으로 나를 평가한 게 아닌 오로지 나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아 떨어뜨린 것을 알고 있기에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은 없었기에 후련했지만, 하루아침에 동기들과 못 본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인턴기간 내내 이런 인연을 만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항상 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같이 출근하고 퇴근도 함께 했기에 허전함이 더 컸다. 3개월 동안 추억도 많았지만 힘들 때가 너무나도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 의지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서로를 이기고 올라가려는 분위기가 아니라 다 함께 잘 되자는 마음이 커서 가능했던 관계였다.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동기들 없었다면 한 달도 안 돼서 그만뒀을 것이다.

회사에 고마운 건 이런 동기들을 만나게 해 주고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고난과 역경을 줬다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상처도 많이 받고 울기도 많이 했던 나의 첫 사회생활이 끝났다.






나의 도전 

   

첫 사회생활에서 크게 데이고 느낀 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 대체불가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지금 전문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통계뿐만 아니라 수학과 경제까지 공부를 해야 해서 나에게는 매우 어렵겠지만 1년 됐건 2년이 됐건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래도 27살일 테니까.

더 늦게 전에, 아니 더 늦어도 해보고 싶은 건 도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3년을 돌아보니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 참 많았다. 나는 겁이 많아서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은데 올해는 왠지 모르게 ‘일단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용기로 성취도 했고 상처도 받았지만, 그로 인한 기쁨과 아픔이 합쳐져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매년 내가 성장했다는 글을 써서 지겨운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 ‘성장’이라는 단어는 매년 새롭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 성장했네!’라고 느낄 정도면 1년을 알차게 잘 보냈다는 뜻 아닐까? 나는 매년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된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겠지만.



2024년엔 하기 싫은 숙제가 있어도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은 건 용기 있게 도전해 보고,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걸 다 해낸 2023년의 나를 생각하면서.



     

유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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