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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란 May 18. 2021

누군가의 성취가 나를 우울하게 할 때

예민한 MZ세대의 세상보기

“…되게 열심히 사네?”


인스타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계정을 발견하면 괜히 나이를 찾아본다. 나보다 언니일 때는 안심하고, 어리거나 동갑일 때는 그 페이지를 얼른 닫아버린다. 내 열등감을 그 사람들이 알아채기라도 할 듯이 잽싸게. 나보다 어린, 혹은 동갑인 사람들의 성취는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이런 감정이 들 때마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너보다 어리면 뭐? 얼굴도 이름도 방금 알게 된, 너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왜 열등감을 느껴? 왜 그 사람이 너의 우울의 원천이 되는 거야?


나도 모르겠다. 왜 이런 허상의 열등감을 느끼는지…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나는 내가 아주 특별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언젠가 갑자기 성공할 것 같고, 주변인들에게 “너 진짜 멋있다”라는 소리를 밥 먹듯 듣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유퀴즈’에 나오기도 하는…… “걔 그렇게 성공했대”의 ‘걔’가 될 거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결국 내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니까 그런 것 같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받을 줄 알았던 스포트라이트가 죄다 그 사람한테 옮겨간 것 같달까?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러는 걸까, 아니면 내가 음침한 걸까.


모든 사람이 이런 게 아니라면, 내가 이런 이유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경험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그래서 면학실에도 기숙사에도 들어갔고, 선생님들도 나를 좋아했으니까… 그때부터 ‘난 특별하니까 어찌됐건 성공할 거야!’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자랐을지도 모른다.


근데 현실은 아니었던 거다. 세상에는 주인공이 되려면 갖추어야 하는 요소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사회성도 좋아야 하고(고등학교 때까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개념이다), 글도 잘 써야 하고, (대외활동 하려면) 패션으로 자기 개성도 나타낼 줄 알아야 한다. 공부 잘하고, 친구 많은 것이 평가 기준의 전부였던 19살의 우물에서 빨리 벗어났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자니 또 반발심이 생긴다. ‘왜 내가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정의해야 해?’하고. 그래서 내 정체성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허상의 열등감을 계속 느낄 것인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열등감을 긍정적인 자극으로 바꿀 것인지.


답은 정말 뻔하고 간단했다. ‘남과의 비교’라는 전제조건을 빼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냥 나 자체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그만. 특별하다는 건 제로섬게임이 아니니까, 남이 나보다 열심히 산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갑자기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사람과 운명의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도 다 다를 텐데 뭐 하러 비교를 했을까, 의미 없이.


어차피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사는 스물세 살은 될 수 없다. 앞으로도 열심히 사는 사람을 수없이 만나게 될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땅굴을 파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냥 나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된다. 매일같이 밤을 새는 후배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말자. 어차피 나는 밤도 못 새는 체질이고, 차라리 밥 안 먹고 안 쉬면서 일을 일찍 끝내버리는 타입이니까. 벌써 취업계를 내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기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말자. 애초에 걔랑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다른걸.


‘비교하지 말고 나는 나대로 살면 돼’ 같은 진부한 말을 새삼스레 가슴으로 깨닫게 되는 날들이 있다. 오늘처럼. 이런 말을 하나둘씩 체화하며 내가 한층 성장했다는 생각을 할 때면, 어른들이 왜 그토록 뻔한 말을 조언이랍시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만 해도 이 뻔한 말을 에세이라며 쓰고 있으니까.


Writer R

스물세 . 아직도 관계에 서툴지만, 지나가는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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