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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란 Jul 27. 2022

느슨한 연대의 글 모임이 내게 주는 것

사랑하는 행위를 더욱 사랑하려고

최근 내방글방이라는 글 모임을 하고 있다 읽고 쓰는 행위를 더욱더 사랑해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주의 마지막 한 시간이다 매주 일요일 밤 10시에 각자의 방에서 불을 끄고 스탠드만 켜 놓은 채로 핸드폰 너머로 만나 이번 주 쓰고 읽은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항상 그 자리에서. 이번 주 글쓰기 리츄얼을 하기로 했지만 하나도 못했고 엉망이었고 그 이유는 너무 바빴기 때문인데 사실 이게 변명인 것을 알고… 그게 끝이다 서로의 글에 대해 딱히 피드백을 남기지도 않고 (너무 좋았으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저 부담 없이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게 다인 모임이다. 지금 공통 목표는 일주일에 완성된 글 두 편을 올리는 것인데 그 완성된 글이라는 건 한 줄이어도 상관없고 사실 두 편을 올리지 않아도 어떠한 벌칙도 없다 그저 잠깐 잔소리를 듣는 정도 … 엄청나게 느슨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잘 굴러가고 있는 이상한 모임.



멤버는 단 두 명이다 나와 류니버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를 수가 있나 싶은 사람이다 몇 번 보고 어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이다, 결이 맞는 사람이다 끌릴 정도로 비슷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고 이외의 것은 완전히 반대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지만 나는 그렇지 않고 전화를 좋아하지만 나는 문자가 더 좋고 대화를 하면서 정리하지만 나는 혼자서 끄적이는 게 더 정리가 잘 되는 사람이고… 또 글 쓰는 스타일도 정말 다른데 예를 들면 복숭아를 보고, 나는 제철과일 말랑 복숭아가 딱딱 복숭아보다 여름의 맛이 나는 이유 등등을 쓴다면 그녀는 복숭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쓴다 복숭아를 깎으면 마음이 정리가 되고 과일은 깎여야만 하는 운명이며… 그 친구처럼 추상적이고 문학적인, 몇 번을 곱씹어도 느낌이 다른 신비로운 글은 내가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고 그녀도 똑같이 말한다 나는 언니처럼 내밀하게 나를 드러내는 글은 쓰지 못할 것 같아, 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같은 고민을 공유한다 읽고 쓰지 않으면 내가 너무 불행한 걸 아는데도 난 왜 안 할까? 어떻게 생각해 언니 우리 왜 이러는 거야? 내 글 너무 쓰레기 같아서 공유하기 싫어 글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루 종일 하는데 막상 쓰는 시간은 0초야…  모두 글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고민이고 이에 대해서 우리가 딱히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고 미니 과제도 내면서 골몰하긴 하지만 -쓰고싶은 글 찾아오기 옆에 두고 매일 꺼내볼 책 찾기 같은 것들-  이렇게 해야 해,라고 답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확정 짓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게 맞을까. 글쓰기에 진리는 없으며 우리가  그 진리를 찾을 수 있는 레벨도 아니라는… 걸 알아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모임은 답이나 해결책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냥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럼으로써 내가 사랑하는 이 행위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게 핵심이므로…



강제적인 규칙을 하나도 만들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일주일에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거나 주의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와 이 모임이 부담이 되어버리는 것 외면하고 싶거나 빨리 해치우고 싶은 시간이 되는 것이라서… 그렇게 되는 것만은 절대 싫은 나머지 그냥 빈칸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빈칸은 비어있는 채로 두고 그 옆에 이것저것을 끄적이는 방식을 택한 걸 지도. 또 그런 규칙 없이도 우리는 잘 굴러갈 수 있다는 깊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나랑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 나만큼 글이 간절한 사람 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는 자체만으로도 … 힘이 된다. 위에 말했듯 우리는 너무 다르지만 또 비슷해서 서로가 이 모임에 대해 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읽고 쓰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처음이고 생각보다도 더 충만하고 설레는 일이다. 내방글방을 하는 날이면 늘 잠을 설치는데 물론 모임이 늦게 끝나서도 있지만 밤새 쿵쾅대는 심장을 자제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엔돌핀이 막 돌고 기분이 좋고, 뭐든 다 잘될 것 같고 갑자기 주변인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고 좋아하는 이에게 다가가고 싶고. 그런 기쁨 감정 과잉의 상태가 주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건 참 꿈같은 일이지.



20대 초반에는 독서 모임 같은 걸 많이 찾아다녔는데, 그냥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지적 허영심… 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가 날 너무 찝찝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 사람들과 대화,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그렇게 찾아갔던 독서 동아리에서는 애써 그래 내가 원하던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가짜였다는 걸, 내방글방을 하면서 느끼고 있다 그건 채워지는 게 아니었어 이게 진짜 채워지는 거야. 읽고 쓰는 일에 대해서만 한 시간 두 시간을 떠들 수 있는 게 네가 원했던 대화야. 그래서 나는 매주 일요일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니 과제로 읽은 이동진 평론가의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책을 사랑하는 행위를 다양하게 하자, 그 행위를 확장시키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샅샅이 사랑하면 책이 더 좋아집니다. 저한테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 내방글방도 글을 책을 쓰는 것을 읽는 것을 더 샅샅이 사랑하는 행위의 일종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렇게 요약해볼까 한다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임은 아직 초창기라서 나무보다는 갈대 같은 모양새지만, 그래서 외부 자극에 의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없지만어떤 형태이든간에 계속  자리에 있다면 좋겠다.  이상 글에 대해 말할  없을 때까지 혹은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까지그리고 나는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감히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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