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성을 동경했던 20대 초반에서
20살 이후로 줄곧 외향성을 동경하며 살아왔다. 아직 탐색기간에 있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 용기가 욕심났고, 같은 말을 해도 분위기를 훨씬 더 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했는데 관계를 형성하는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걸 매일매일 느낀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 부러움이 극에 달했다.
20살 겨울방학 때, 고등학교 친구랑 같이 뷔페 알바를 시작했었다. 첫 출근도 같았고, 항상 같은 마감 스케줄에, 같은 사람들과 술 마시며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늘 그 사람들은 나보다는 내 친구 M과 훨씬 더 가까워져 있었다. 한 번 같은 섹션에서 일하고 나오면, 내겐 대하기 어려웠던 언니와 M은 어느새 서로를 부르는 애칭까지 만들어서 투닥투닥했고, 술마시자는 제안이나 아르바이트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은 늘 M을 통해서 나에게 왔다. ㅇㅇ언니가 술마시재. 너한테도 물어보래. 응 좋아! ㅂㅂ오빠가 설빙 사준대. 너도 같이 오래. 맛있겠다~ 신나게 말하면서도 친구에게 그런 말을 전해 들을 때마다, 난 결코 형성할 수 없는 두꺼운 친밀함을 내 눈으로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텅 빈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응? 너네 그렇게 까지 편한 사이 된 거야? 대체 언제? 둘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구나. 난 아직 모두랑 서먹한데.
나도 M처럼 모두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아니, 모두는 아니더라도 딱 한 명이라도, 나랑 더 친한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경쟁심리 같은 건 아니었고, 그냥… 나도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누군가와 편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받고 싶었다. 그런 모습이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고, 아니면 무언가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확인받고 싶어서, 나의 내향성을 꽁꽁 숨기고 M의 모습을 ‘손민수’ 했다. 얘는 둘이 있을 땐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구나. 좀 무례하고 왈가닥 해 보여야 사람들이 편하게 대해주는 건가? 상황을 스무스하고 장난스럽게 만드는 태도가 부러워서 나도 일부러 살짝 선을 넘으려고 했고, 원래 이런 아이인 척 내 TMI도 마음대로 말해보면서, 갖은 ‘척’은 다 해봤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내향적인 나는 아무리 그런 행동을 따라 해 봐도 그 외향 친구의 여유로운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안 할 때 보다 더 뚝딱대는 내가 느껴지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불편하다는 걸 어떻게 잘 숨길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그러다가 어색한 웃음을 짓게 되는… 이 일련의 뚝딱임 과정에서 오히려 나의 매력도가 더 반감되는 느낌이었달까. 외향 친구에게서 어떤 행동을 똑! 떼어 가져와서 따라 한다고 사람들이 하하하 웃으며 편해지는 건 아니더라. 그 행동은 진짜가 아니고, 내가 이미 불편하게 너를 대하고 있다는 게 공기로 느껴지니까 당연히 그 사람들도 편해질 수 없었던 거겠지. 난 평생 노력해도 쟤처럼 외향적인 사람은 될 수 없겠구나. 흉내 내는 데서 그치겠구나. 앞으로도 내게 관계는 힘들겠구나.
그렇게, 한동안은 내 내향성은 그저 구석에 처박아놓고, 돌보지도 않고,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외향성의 뒤꽁무니만 쫓았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 애물단지를 인정하게 된 것은 다른 이들에게서 내향성의 매력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들. 약간 어색한 텐션 높은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이루어지는 내향인들의 눈빛 교환 (이런 분위기 기 빨린다 그쵸?), 다수가 모인 상황에서보다 일대일 대화에서 한 꺼풀을 벗고 표현을 잘하게 되는 그 수줍은 솔직함, 뱉는 빈도는 적어도 뱉을 때마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다는 것이 티가 나는 단어들. 그들은 자신들이 낯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조금 수줍어하고, 낯을 많이 가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그어둔 선이 훨씬 많다는 걸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고 드러냈다. 이런 매력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제가 이렇게 연기하고는 있지만 저도 님들과 같은 과에요! 저도 내향인이에요! 껴주세요!
지금이야 ‘내향’ ‘외향’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성향을 설명하지만, 사실 저 때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잘 못 할 만큼 미성숙했다. (지금처럼 MBTI 가 유행했던 것도 아니었고) 외향과 내향의 우위 관계가 확실한 것 같았고 (무조건 외향적인 사람이 더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매력 있는 성격과 매력 없는 성격이 정해져 있어서 절대 못 바꾸는 것 같았고… ‘성향의 차이’라며 인정하기보다는, 그저 ‘내 성격의 문제’로 돌려버리고 나를 원망하는 방향을 택했었다.
그러니까, 외향성을 동경했던 이유는 그게 절대적으로 좋은 성격, 매력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믿어서였는데, 각자의 방식대로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그게 아니었구나. 외-내향의 문제가 아니라,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워 어색하지 않게 만들고, 누구에게 먼저 장난을 걸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솔직함’이 매력적이었던 거다. 자신의 삶의 궤적이 그동안 어떻게 돌아갔는지,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털어놓는 사람이 좋았던 거다 난. 외향적인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외향성은 곧 매력이구나.’라고 착각한 거고.
솔직-내향의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쌓이면서 나는 굳이 내 안의 내향성을 숨기지 않았다. 인정하고, 사랑해줬고, 드러냈다. 이게 내 단점이나 결핍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성향일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생각해봐.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이 다 목소리 크고 잘 다가가는 사람뿐이었는지. 외-내향을 떠나서 사람에게 느껴지는 고유한 매력이 있는 거고, 그건 솔직할 때 비로소 잘 드러난다. 응, 나 내향적이고, 집이 좋아. 다른 사람이랑 친해지는 데 시간 많이 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자기소개하는 거… 모두가 날 집중하는 거 정말 힘들어. 나한테 관심 주지 마! 애써 외향적인 척 연기하기보다는 진짜 ‘나’를 보여주는 연습을 했고, 그 결과 난 ‘척’ 했던 때 보다 더 편안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내향인에게 뭔지 모를 유대를 느꼈던 것처럼, 다른 내향 인도 나를 ‘내향 레이더’로 포착하고 괜한 내적 친밀감을 느끼지 않아 줄까… 그런 기대감을 안고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 사실 외향인보다 내향인의 유대 쌓기가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왜, 원래 외부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집단이 더 끈끈해지는 것처럼. 외향성에 치여 내향성을 미워하다가 돌고 돌아 솔직하게 인정하게 된 사람들끼리도 그런 끈끈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게 아주 수줍고 느려서, 서로 잘 느끼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난 그런 느슨한 유대가 참 애틋하고 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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