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는 자식의 자식이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한 애정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예찬, 그러니까 손자와 함께 하며 찾은 완벽한 사랑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나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 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 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 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그것을 읽으면서 나도 자연스레 할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할머니도 내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어서. 내가 어렸을 때 받았던 사랑과 너무나 비슷한 냄새가 난다.
누군가 할머니에 대해 쓰는 글에는 늘 할머니와의 셀 수 없을 만큼의 추억이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는 어떤 이였나,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것들이 들어가 있던데 나는 부끄럽게도 그런 것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로 바빠 할머니의 손을 많이 타고 자랐음에도 기억나는 것이 없는 걸 보면, 그만큼 내가 할머니에게 무심한 손녀였나 보다. 다만 정말 선명한 기억 하나가 깊이 저장되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나, 뽑기 기계를 너무 돌리고 싶었고 나도 친구들에게 아폴로 따위의 군것질 거리를 사주며 뽐내고 싶어 할머니 가방에서 동전 지갑을 꺼내 백 원짜리 몇 개와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오백 원짜리를 그냥 가져갔던 (훔쳤던…) 적이 있다. 그때는 ‘완전 범죄’를 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을 정도로 어렸기 때문에 그 흔적을 갈무리하지 않고 그냥 밖에 나가버렸다. 그러니까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가방의 내용물이고 십 원짜리고 동전 지갑이고… 할머니 방에서 현관까지 차례대로 흩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가 뭐 말할 것 없냐, 내 가방 만지지 않았냐, 이야기하다가 내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보이니 혼내지 않고 그냥 조근조근하게 다음에는 그냥 할머니한테 애들이랑 놀고 싶다고 말해,하고 나를 꼭 안아줬던 기억. 아빠가 엄한 편이셨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다정한 종류의 타이름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 기억이 이렇게나 선명한 것인가 보다.
할머니는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뭐 5-6살 때쯤 돌아가신 것처럼 읽히겠지만, 사실은 내가 20살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나셨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스무 살이 뭐가 어렸을 때야? 그치만 여기서 ‘어렸을 때’ 라는 건 단순히 숫자를 말하는 건 아니고, 할머니가 내게 주는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때, 그저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을 때, 그리고 내가 지금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때를 말한다.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아프셨다. 17,18,19살의 나는 내 눈앞에 닥친 문제가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었다. 입시, 생활기록부, 당장의 시험 성적 같은 것들. 병문안을 갈 때도, 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사랑의 마음보다는 그 시간 동안 풀지 못하는 문제집에 대한 불안이 더 컸던 것 같다. 실은 내가 입시를 끝낼 때 까지만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으셨으면, 하는. 표면적으로 볼 땐 아주 평범한 소망이지만 사실 그 알맹이는 너무나 이기적인 바람도 했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 할머니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두지 못했다. 단 한켠조차도.
여느 맞벌이 가정에서 그랬듯이 나도 할머니 손을 많이 타며 자라왔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살았고,
따로 살았을 때조차 ‘걸어서 5분’이라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나 난 할머니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내 세계가 너무나 좁았어서 타인의 세계가 그리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당장 다음 시험에 나올 영어 서술형 문제가 궁금했지 할머니의 과거나 외로움이나 일상을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 얘기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 얘기도 묻지 않았다.
할머니 집 좀 자주 들리라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할머니를 찾아갈 때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의무감이 더 컸었다. 사실 혼자 있는 것의 외로움, 이라는 개념 자체를 그때는 몰랐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는 늘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래서 혼자 사는 할머니가 외롭고 심심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알고 있다. 특별하게 해치울 일 없이 집에 혼자 종일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잠을 아무리 자도 깜깜한 밤이 오지 않는 날에 얼마나 우울에 잠식되는 지를. 내가 이런 걸 알고 있는 지금, 아빠가 왜 그렇게나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말했었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는 지금이라면, 좀 더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자주 보러 갔을까.
사실 당시에는 할머니 집에 찾아갔을 때도, 편하게 있기보다는 일부러 밝은 척 꾸며낸 모습으로 이것저것 물었었다. 그 질문은 고작 할머니는 왜 여섯 시 내 고향만 봐? 나랑 다른 거 볼래? 같이 영양가 없는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그냥 내가 아무 말 않고 편하게 당신네 집에 있는 걸 더 바랬을 거다.
혹은 저런 표면적인 말 대신에 나는 할머니에게 이런 걸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꿈은 뭐였어?
할머니는 학생 때 어떤 아이였어?
어떤 과목을 좋아했어?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 동전 훔쳤으면서 안 훔친 적 했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할머니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야? 누구였어?
혼자 집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이 언제야?
내가 아는 할머니라면 분명 기쁘게 손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을 텐데,
어렸을 때는 왜 이런 것에 대해 물을 생각을 못했을까?
왜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사람들에게 궁금증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다. 나보다 많은 경험을 해본 누구든, 아니 그냥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든, 처음 만난 이에게든… 궁금한 것이 많아서 꼬치꼬치 캐묻는데. 왜 그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경험이 많았던 할머니에게는 하나도 궁금한 것이 없었을까.
할머니가 보고 싶다. 건강했던 할머니랑 대화를 하고 싶다. 할머니의 첫사랑, 꿈, 울고 싶었던 순간, 젊은 시절을 물으면서 그의 빛나는 눈빛을 보고 싶다. 묻고 싶은 것도 사과하고 싶은 것도 표현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모두 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슬프다.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고질병은 사자에게도 똑같아서, 늘 가족과 함께 할머니를 찾아갈 때는 이런 것들을 속으로 삼킨다. 고작 말하는 것이라고는 할머니 안녕, 나 왔어, 보고 싶어, 잘 있어. 두 어절을 넘기지 않는 표현들. 이렇게나 묻고 싶은 것들을 잔뜩 생각해 놨으면서도 할머니가 이런 내 마음을 내뱉지 않아도 읽었기를, 바란다. 할머니 나 이렇게 할머니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어. 내 마음 다 보고 있는 거 맞지? 거기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있는 거지? 하고. 지금조차도 나는 이기적인 손녀인 것이다.
이기적인 바람이라는 걸 알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뒤늦게나마 당신에 대해 깊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조금만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어도, 이 세상 어느 사랑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였어도. 우리는 좀 더 대화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가 준 사랑의 기억이 흐릿해져 간다. 그게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