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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란 Jun 06. 2021

대화를 자꾸 곱씹어서 힘든 예민한 사람들에게

대화가 좋지만 이불킥은 싫은 이들이 기억해야 할 3가지



나는 대화에 관해서 상당히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 가치관을 나누고 서로의 영혼을 두드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대한 갈증은 항상 있으면서도


- 막상 그런 대화를 나누며 내 얘기를 많이 하면 늘상 후회한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말아야지! 다짐한다 (불가능 하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내가 꿈꾸는 세상, 좋아하고 싫어하는 영화와 그 이유, 깊이 간직하고 있는 문장 등, 누군가에게 떠들고 싶어 안달복달 못했던 것들에 대해 신나게 말해놓고는 후회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너무 감성적이고 투머치한 사람’으로 판단할까봐 두려워서. 고작 그런 말 몇마디로 내가 ‘어떤어떤사람’이라고 규정되어 지는 것이 겁이 나서.


속으로 꽁꽁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구구절절 뱉어내는 내 모습이, 대화 다음날 부터 약 한달동안 시도때도 없이 자동재생되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오늘도 그러다가 문득, 이미 지나간 대화와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곱씹고, 후회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내 마음을 연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온 것이다.


그래서 일명,  


<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는 싶지만

이불킥 하기는 싫은

예민한 사람들을 위해 ,

우리가 새삼스럽게 기억해야 할 것 >



을 적어보려 한다.

 

어젯밤의 대화가 후회될 때마다 이걸 읽어보면, 나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다가!




1. 사람들은 단지 하나의 말, 하나의 취향가지고 내가 어떤 이인지 단정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쁜 거야! 나는 잘못 없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건 제 취향일 뿐이에요. 왜 그거 하나만 갖고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세요?”


누군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무서워 애써 취향을 감춰왔던 내게 깊이 박히는 말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도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라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내가 쓰고 뱉은 한 줄의 말이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언젠가 공격 당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취향은 취향일 뿐이다! 의견은 의견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수십개의 자아가 있고,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는 넓고도 넓다. 좋아하는 영화가, 책이, 특정 사건에 대한 의견이 그 사람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인생영화가 <7번 방의 선물> 이나 <신과 함께> (일명 cj감성이라고 치부되는) 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감성이 가벼울 것이라고 감히 짐작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단지 인생영화 하나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어땠는지를 비춰주는 게 아니니까.


술김에 뱉은 한 마디가 그 사람의 모든 면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취향이 안맞는다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나와 그 사람의 모든 게 안 맞는 건 아니다.


적어놓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들 아닌가? 오히려 이런 것들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하고 싶을 정도이지 않나? 그러니까, 대화 한 번으로 내가 판단될 것 이라는 두려움은 버리도록 하자!



2. 말하지 않는다면 나를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좋아할 사람도 없다.

무색무취의 사람이 될 뿐이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오타쿠라고 싫어하겠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와 더 깊은 교감을 나누며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다. 반대로, 굳이굳이 애니메이션 좋아한다는 걸 꽁꽁 숨긴다면 날 오타쿠라고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과 깊은 유대를 쌓을 기회도 없어진다.


숫자로 설명해보면 이렇다.

적극적으로 나를 드러냈을 때 :

싫어하는 사람 (-1) 날 좋아하는 사람 (+1) = 0

평가와 미움이 두려워 나를 꽁꽁 숨겼을 때 :

싫어하는 사람 (0) 좋아하는 사람 (0) = 0


어차피 똑같이 0일바에는 작은 울림이라도 일으켜보는 게 낫지 않나. 적어도 첫 번째 상황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표현하고, 각인시킬 수 있다. (아 그 애니 좋아하는 사람!)

그치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특정한 키워드로 정리되지 않는 무색무취의 흐릿흐릿한 사람이 되는거다. (누구였더라...?)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종이라고 생각하는 바... 우리 모두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기는 싫지 않은가. 나를 꽁꽁숨겨서 내가 얻는 게 뭔데! 존재감 없다는 상처나 받지.


최근 급속도로 친해진 2명의 친구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낯을 가리고 사람한테 많이 뚝딱대는 내가 빨리 맘을 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친구들의 당당함이었다. 자신의 가치관, 취향, 깊은 얘기를 거리낌없이 해주는 당당함! 덕분에 나도 편하게 마음을 드러내고 교감할 수 있었다. (물론 성격적으로 잘맞아서도 있지만! 아니, 그 친구들이 본인 얘기를 많이 해줘서 성격이 잘 맞다는 걸 느끼게 된걸까? 전후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어려운 것 같다)


여하튼, 난 그동안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관종’이라고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서 최대한 튀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많이 애썼다. 굳이 애썼다!

미움받기 싫어서 나를 굳이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나? 나를 드러내고 미움받을 용기를 갖자. 유명한 말 중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 10명이 있으면 그 중 7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날 싫어하고, 1명은 좋아한다.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할 사람은 날 좋아한다면, 날 좋아하는 그 한 명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깊은 유대를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나에 대해 많이 말해야한다!


3. 대화에 정답은 없다.

곱씹기 금지!


지난 날의 대화를 곱씹으며 가장 많이 하는 짓은 ‘아.. a말고 b라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계속 ‘더욱 더 좋은 대답이 무엇이었나’를 고찰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 물어봤을 때 백수린 말고 박완서라고 대답할 걸. (백수린을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박완서가 더 유명하니까 아무래도 대화를 더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

뚝딱대지 말고 ‘그때 왜 저희 버리고 먼저 가셨어요~’ 라고 친근하게 장난이라도 쳐볼걸. (그럼 오히려 더 깔깔깔 웃고 편하게 스몰톡 할 수 있었을텐데... 아 왜 그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 너무 굳어있었네)


지나간 말과 행동에 대해서 정답을 찾는 일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지금 고민한다고 해도 그때의 내 대답을 고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화에는 정답이 없는걸! 소개팅도 아니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 도전과제도 아니고... 나는 그냥 솔직하게, 편안하게 내 얘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좀 더 재미있는, 재치있는 답변은 존재하겠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런 답변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유재석도 힘들걸? 나도 한 50개의 대화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겠지. 그럼 또 다른 50개의 대화에서는 좀 진지하고 재미없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동안 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어떤 이미지를 가진 사람’으로 억지로 꾸며내고 있었기에 이 세 가지 모두 어려웠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알맹이’가 없어서 ‘껍데기’를 포장하는 사람이었던거지.


이제 그런 짓은 그만 할 것이다. 조금 진지하고 괴짜스러운 나의 ‘알맹이’를 편하게 보여줄 것이다. 그런 나를 유별나다고 생각하라지 뭐! 그 중에는 분명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생길 거니까. 내가 블로그에 쓰는 오글거리는 글을 보고,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동기J처럼.


내 취향과, 말과, 그냥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울림이라도 주고 그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면 그것 만큼 내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성적이고, 진지하고, 예민하지만

대화가 좋은 이들이여!


우리 마음껏 말하고 곱씹으지 않으면서 살아봅시다!

야호!




- 어제 대화를 고찰하며 이불킥하고 있는 사람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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