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 친구와 나는 우리 집 근처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그 카페는 2층에 있었는데 구석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그가 나를 먼저 알아보며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다.
그와 연인이 된 후,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날 때면 항상 그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 만날 때처럼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때와 달라진 건 긴장하며 앉아있던 그가 카페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나를 사랑스러운 미소로 반긴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 카페는 '그와 나'의 단골 카페였지 '나'의 단골 카페는 아니었다. 집 근처여서 한 두 번 가본 게 다인 곳이었는데 그를 만나면서 단골이 되었다.
평생 단골이 될 것 같았던 그 카페는 그와 헤어지면서 금기의 장소가 되었다.
이별 후, 초반에는 그 카페를 지날 일이 생기면 우회해서 다녔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우회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그 카페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흐른 어느 날,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그가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90년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을 지날 때면 한 번씩 그 자리를 올려다보곤 했다.
몇 번 더 그러는 사이 시간은 또 흘러 더 이상 그 카페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나의 금기의 장소에서 추억의 장소로 조금씩 포지션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얼마 전 별생각 없이 집 근처를 걷다 그 카페가 문을 닫은 걸 보게 됐다. 문을 닫은 지 좀 됐는지 가게는 비어져 있었고 '임대문의'라는 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굳은 듯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멍하니 텅 빈 카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첫 만남이라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뒤이어 그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들과 이별에 아파하던 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수많은 감정들과 추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더 있다가는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그 카페는 이제 마음 깊은 곳 어디엔가 추억의 장소로 잘 봉인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걸까?
1년 가까이 가지 않은, 한동안 보기만 해도 마음 아팠던 카페였지만 서서히 추억의 장소로 남겨지는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그 카페를 보며 가끔 생각났던 추억도 이제 고이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다.
집 근처의 한 카페가 문을 닫았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건 지금의 계절 영향도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온도도 함께 내려가는 가을이 왔다.
서늘해진 공기만으로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이 시기에 지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그가 우리의 단골 카페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그는 이 소식을 영원히 모를 듯하다.
그리고 듣는다 해도 나처럼 오만 가지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문득 그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많이 슬프고 아팠었지만 그가 불행하게 사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원망이 남아서인지 행복을 빌어주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의 어머님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문을 닫은 그 카페의 빈자리는 곧 새로운 공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때쯤에는 내 곁에도 누군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